체념과 변화
경험이 쌓인다는 것은 익숙함의 징표다.
겪을수록 익숙해지고 완숙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에서 철이 들어가면서 배우고 숙이고 인정하는 부분이다.
저사람은 타고났어! 역시!
하지만! 이러한 부분들을 우리는 언제부터 당연시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어릴적엔 자기의 적성과 재능이 무엇인지를 몰라서 남들이 하면 나도 한번 해보겠다는 결심을 하고 또 노력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때부터 나는 인정하고 현실이란 테두리안에 나를 가두게 되었을까?
우린 어른이 되어간다는 합리적 변명으로 우리를 생각속에 가두었던 것은 아닐까?
이렇게 철이 들어버린 어른이라는 인간의 한 시기에 우린 육체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그 죽음의 상태에서 그 생각이 굳어져 하나의 형체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신앙인들 그것이 불교, 도교, 기독교이던
이런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생각의 세계를 개척해가는 스타일들이다.
제대로 된 신앙인들이라면...
그렇기에! 하늘나라에 가더라도 각 종교에 해당되는 영인들이 그들을 인도하러 오는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를 예를들자면!
각 차원에 해당하는 천사들이 다가와서 말을 걸고 대화도 한다.
그리고 생각의 파장이 맞으면 쉬이 인도해간다
하지만! 파장이 맞지 않아서 받아들이지 못하면 몇날 몇일씩 와서 설득도 하다가 결국 돌아서기도 한다.
보다 빛의 세계로 인도되어가면 얼마나 좋을까?
헌데 육신을 벗어난 영은 자기 차원이 아닌 파장엔 두려움을 느끼고 심지어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자기영이 편하게 받아들이는 그 세계로 가는 것이다.
결국 죽을때까지 고집스럽고 주관이 강하고 신념이라는 고정된 생각이 확고하다면 이것이 양날의 검이 될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도인들은 어느 하나에 집착하지 않고 관조하는 것이다.
보다 차원높은 곳을 향하기 위해서!
변화의 세계란 우리 영이 궁극으로 향하여 가는 곳이고, 천국이란 고정된 형태의 세상이 아닌 변화의 과정들이 찬란하게 펼쳐지는 세계다.
지옥을 다녀온 사람들 이야기는 한결같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고정되어 변화가 멈춘어진 세상이라는 것이다.
우린 생각이 멈추어버리는 경험들의 연속된 삶속에서 살아간다.
그리하여 반복된 삶에서 어떠한 변화도 얻지 못하고 단지 기계적 삶을 되풀이 한다.
신앙은 이러한 반복적 삶속에서 생각이란 세계로 이끌고 그 안에서 변화를 목적하여 나아가게 해주는 것이다.
기복신앙! 무엇인가를 구하고 받는..
신앙이란 생각의 변화와 차원적 행위의 실체를 확인해가는 과정인 것이다.
하여! 완성되어지고, 변화되어지며 목적성을 띠게 되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비단 하나님을 믿는 것 뿐인가?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기독교인에게 신앙의 전제인 것이지!
그것이 목적은 아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있다면, 인간 또한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 있는 것이다.
내 생각을 변화로 이끌고 그 변화된 생각속에서 하나님을 늘 새롭게 인식해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이렇게 늘 변화되 모습으로 나아오기를 기대하신다.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은 내 생각의 변화를 이루어간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변화가 멈춘 상태가 체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