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론 1
구원을 바라는 사람과 구원을 주는 사람의 관계설정이란 어떻게 접근해야할까?
내가 전능한 존재가 벌레같은 너희 인간에게 자비와 궁휼을 베풀어서 그 길을 인도하리라!
감사하나이다. 오직 주의 권능에 의지하고 은혜를 구하나이다.
이것이 기독교가 지녀온 지금까지의 구원론이다.
사실 이 구원론은 구약 유대인들이 지녀온 구원론적 사상과 정확히 일치하는 내용이다.
단지 그 대상이 하나님에서 인간의 형상으로 오신 전능자 예수님으로 다르게 표현되었을 뿐이다.
사실 예수라는 인간의 몸을 쓰고 오신 메시아는 하나님께서 사랑을 하시려고 인간의 복장을 입고 오신것이다.
본질은 하나님에 대한 유일한 사랑인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인간이란 육신 즉 사랑의 도구를 통해서 인간에게 접근 하신 뜻이다.
예수께선 자신을 묻고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마음과 뜻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즉 보냄을 받은 자는 보낸자를 증거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세례요한은 하나님이 선지자로 보낸 뜻에 따라서 시대 메시아를 강력하게 증거하였어야 하였지만!
실상은 그가 간 길은 허망했다
햇갈렸다 오실이가 당신입니까? 다른 이를 기다려야합니까?
감옥에서 곤고한 날을 보내다가 제자들을 시켜서 물어보았던 것이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햇갈렸던 근본적 이유가 무엇이였을까?
여기에 바로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종이 제단을 바치는 것을 싫어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을 화목제로 보내시고, 예수께서 산 제물이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육신된 사랑의 도를 배우도록 하신 뜻이다.
그러하니!
세례요한은 율법아래 엄격한 사람이었던지라!
메뚜기와 석청을 먹어가면서 모세가 행했던 그 선조의 길을 순교자처럼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한 세례요한에게 예수님의 사랑이론은 파격 그 자체였다.
인간이 죄의 몸으로 어찌 하나님을 사랑한다 말할 수 있는가?
구약의 생각이 핵인 세례요한의 뇌와 신약의 생각, 사랑이 핵인 예수님과는 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구약의 사고를 지닌 세례요한이 바로 그 구시대의 생각을 지닌 자들을 예수께로 이끄는 그 사명!
주의 길을 평탄케하는 그 역할을 못하고 개죽음을 한 것이다.
세례요한이 헤롯왕의 사랑문제를 건드리다가 허무하게 죽은 것이고!
또 여기엔 하나님의 심판이 들어가있다.
이 시대 사람들은 세례요한의 그 생각을 버리고 새롭게 인식해야 구원의 새로운 길이 보이게 될 것이다.
신약의 사랑과 이 시대 사랑이 계속 같은 것이라면
휴거는 무슨 의미가 있고, 구원은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구약에서 그 생각에서 신약으로 신약의 사랑으로 넘어왔을때 휴거가 된 것이었고, 구원역사도 시작된 것이었다.
안다는 것!
깨닫는 다는 것!
이것은 신랑을 알아보는 문을 두드릴때 문을 열어줄수 있는 신부가 지녀야할 기름인 것이다.
성령의 귀 있는 자는 깨달을 진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