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론7
내가 구원을 받아서 가는 세계는 어떠한 곳일까?
안보아도 비디오란 말이있다.
헌데 사람들은 심리가 그렇다.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통해서 그 허황된 심리를 통렬하게 꼬집었던 것이니!
헌금항하리에 당신이 동전을 떨어트리는 순간 당신의 조상도 좋은 세계로 갈수 있다는 그 교리!
아마도 우리는 물질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또는 더 좋은 구원을 얻기위해서 의를 쌓는다는 명목으로 헌금들을 하고 있을지도!
교회를 다니면서도 신앙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구원을 받아서 갈수있는 세계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신앙들을 해나가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물건을 고를때에도 좋은 물건을 알아야 좋은 물건을 살수 있는 것처럼!
구원. 최고의 구원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구원의 차원도 높일수 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모세, 여호수아의 그 신앙을 부러워하면서 그 세계의 구원을 기대하고 있는가?
사도 바울과 베르도의 구원이 아니고?
구약의 구원이 큰가? 신약세계의 구원이 큰가?
당신은 그렇다면 아브라함보다 더 차원높은 구원을 이루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는가?
여기서 모순이 생긴다.
신약차원의 구원이 큰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구약시대의 인물들이 성경에 나와있으니!
더 큰 구원의 세계에 있을 것이란 막연한 생각들..
정확히 안다는 것이 무엇인가?
물은 고체/액체/기체의 상태로 존재하며, 화학구조식은 H2O로 이루어져있음을 확신하는 것이다.
이처럼!
구원의 세계라는 것도 그 차원적 깊이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어야한다.
아브라함이 신앙의 조상인 것은 맞지만!
다니엘이 뛰어난 선지자인 것도 맞지만!
다니엘이 그렇게도 기도하고 간구하였던 그 구원의 날
바로 예수님이 탄생하시고 사명을 선포하시며!
회개하라! 천국이 눈앞에 있다.
이런 말씀을 듣고 싶어했던 다니엘이었다.
한때와 두때와 반때를 지나서 메시아가 구원의 날이 올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죽을때까지 막연히 기도했던 다니엘!
그것을 고기나 잡던 베드로가 보게되었다.
여러분은 그러한 기연이 그러한 세계가 왜 성경속에만 존재할 것이라 여기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 성경처럼!
구름을 타고 오시니!
높은 건물에서 기도하며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니라!
정작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함으로 인하며 애닯은 마음만 간직하는 것이라!
하나님도 상대체 안에서 실존하시기 위해 늘 몸부림의 삶을 살고 계신다.
이것을 삶이라 칭하신다.
내가 네안에 네안에 내가 일체로서 존재하는 삶이다.
예수께선 이것을 이리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0장
36.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
구원이란 주체와 상대체가 이루어가는 사랑의 세계인 것이다.
하여 예수께서도 사랑이라는 주제를 핵으로 삼으시고 말씀하셨다.
마음.뜻.목숨다해서 사랑하는 것!
하나님도 사랑하고 형제도 사랑하고!
하여! 구원의 세계란 사랑의 세계인 것이다.
천국의 누룩도 사랑인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시기 위하여 그리 말씀하시고 행하셨던 것이다.
이것이 예수께서 행하신 신약역사의 핵인 것이다.
내가 어떠한 사랑을 깨닫고 목적하여 실천해가고 있는 지를 보면 내가 가야하는 천국의 세계가 느껴지고 깨달아지는 것이다.
이러한 핵이 빠져있다면 주일을 성수하고, 헌금과 십일조를 한들..
구원의 모습을 어디에서 찾을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