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란
인간은 언어를 사용한다.
그렇다면 수화를 사용하는 장애인은 어떠한가?
언어란 생각의 근원이 존재하기에 나오는 표현 수단이다.
원숭이가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생각하고 수학공식을 활용해서 생활에 이용하고, 씨앗을 뿌려서 농작물을 키우서 수확을 얻는다면 이미 인간의 차원에 이른 것이다.
결국 생각의 차원에 이르러서 삶을 영위해가는 생명나무가 바로 인간인 것이다.
생각의 차원에 따라서 인간의 범주가 구별되었던 것이다.
호모사피엔스란 그러한 영역에 들어선 인류의 프로토타입인 것이다.
이러한 인류를 창조하기까지 하나님은 오래 기다리셨다.
아담때에 기대섭리가 깨어져 버렸다.
후아담인 예수께서 마음의 도를 닦으사 티벳도 다녀오시고 40일 마지막 금식기도도 하시면서 극적인 생각에 이르셨다.
그래 그 차원의 생각이라면 생명나무라 칭할수 있겠구나!
그 탄생을 하늘의 천사들도 나아와서 수종들었다고 기록한 것이다.
앵무새는 어떠한가? 인간의 언어를 흉내낸다
말그대로 구강구조의 특이성에서 오는 부산물로 인간의 언어를 일정부분 구사하는 것이다.
이때 호기심 많은 과학자들은 앵무새에게 일말의 기대섭리를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그 생각의 세계를 키워온 것이 구약 4천년 이었다.
하나님은 인간이 고생고생하면서 생각차원에 이르기까지 지켜만 보셨다.
그런데 어느 천재가 한명 태어나서 스스로 마음의 세계를 배우겠다고 저 머나먼 이역만리까지 찾아가서 수도를 하고 인간이란 마음존재체에 대하여 성찰하고 결론을 맺었을때 비로소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기대섭리를 깨우쳤던것이다.
신명기 6장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이 구약성경을 재해석 한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마태복음 22장
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모든 율법과 선지자가 지녀야할 기본 덕목을 빠트리고 제단만 드린다고 있으니!
이를 외식과 형식에 치우친 신앙이라 회개시키셨다.
다시 돌아와서...
구약 4천년을 통해서 얻은 깨우침을 모든 인류가 지니도록 설파하셨으니..
이를 통하여 생각의 근본 그릇을 만들어주시려 하셨다.
그래서 신약 2천년을 생각하여 모든 삶속에서 영과 육의 조화를 이루도록 하셨다.
한차원 높은 신앙과 생각의 세계를 이루도록 종교개혁도 있었고, 르네상스도 있었다.
르네상스가 신학에서 인문학으로 전환이라 보지만! 실상은 그 반대이다
영과 혼으로 살피어 보면 하나님이 주도하신 세계사의 흐름이다.
예수께서 구약인들의 그릇된 신앙관을 바로잡아 주었듯이!
선지자 루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신앙과 삶을 바로잡아주신 생각의 역사였다.
95개조 반박문은 그릇된 신앙관에 대한 통렬한 회개와 반성의 촉구였던 것이다
그러한 흐름속에서 인간의 생각에 변화가 일어났고 그 영향으로 인문학을 통한 인간개성의 씨앗이 심어졌던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모든 예술과 학문을 통하여 참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탐구할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지금은 하나님께 어떠한 시대언어를 배워야할 때일까?
언어란 신분에 따라서 관계성에 따라서 사용하는 언어의 종류가 정해진다.
구약은 예! 또는 아니요!
해라!/ 하지마라! 의 정언명령이다.
모세도 그랬다 하나님이 출애굽을 시키시는데
하여라! / 아니요! 그래도 해보거라!/ 아니요!
결국 하나님께서 노하셨다. 네 형 아론이 말에 능하니 델꼬가서 전해라! / 예!
그것이 신약의 언어인 아들언어에 와서 변화를 시작했던 것이다.
구약은 예/아니요! 이것이라 제단을 쌓고서 흠양하시고 서로 만족했던 것이다.
신약의 생각차원에 이르러서야 하나님도 들으시고 마음에 음성도 주셨던 것이다.
구약엔 꿈에 장면으로 주로 계시하셨다.
그러다 신약시대에 평신도에게도 음성을 주시니까! 성직자들은 이단이라는 등 아단법석을 떨었던 것이다
지금의 시대는 신부라는 근본 생각을 언어로서 표현하는 시대다.
하나님도 신부를 대하는 신랑의 입장에서 말씀하시고 대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천년 혼인잔치의 역사라한다
기독교에서 호들갑을 떠는 천년왕국 교리다.
언어를 배우는 것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생각의 세계가 확장되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이것을 영혼의 성장이라 한다.
사람이란 생명나무는 이러한 존재의미이기에 하늘의 천사들과도 대체불가의 신적존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