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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요령

레밍턴21 2024. 12. 10. 23:50

기도를 한다는 것은 자기 생각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때로는 실천을 통하여 몸이 느끼고 뇌에서 생각이 일어나게 만드는 과정이며!

혹은 마음을 비우고 관조하여 하나의 현상을 통한 그 본질을 깨닫는 과정이 기도인 것이다.


절대자와 어떠한 언어로서 소통하고 대화할 수 있을까?

신학자들이 필수로 배우는 라틴어나 히브리어일까?

삶의 언어 생활속 언어 영혼의 언어란 무엇인가?

기도란 그러한 일체의 언어를 구사하는 행위다.

이외엔 어떠한 기도도 존재할 수 없다.

유형과 무형의 세계가 소통하는 이치란 어디에 있을까?

육신과 영은 서로 통하지 아니하기에 하나님께선 인간의 육신과는 대화하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창세기 6장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내 삶이 육적인가? 영적인가?

신앙인들이라면 가끔씩 뒤돌아보게 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내게 확실하게 내 신앙을 분석하고 충고해 주지는 못한다.

이럴때 기도의 근본을 깨닫고서 내 삶의 지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살피면 내 스스로가 기도를 하고 있는지 알수 있다.

무형의 존재자이신 절대자와 유형의 존재체인 사람과는 의사소통의 방식이 판이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말을 믿지 아니하시고 그 사람의 행실을 보신다.

그러하기에 그 사람의 삶 자체가 기도이고 대화이고 영적 언어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하루를 구도하면서 살아가는 지혜를 배울 때이다.
시대가 그러하니!

이는 바로 신부시대이기 때문이다.

신부차원의 삶이란 삶속에 하나님과 대화하고 소통하여 하나님과 삶에서 일체를 이루어가는 삶이기 때문이다.

신혼부부가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면 사로한 거 하나까지도 대화하고 의견을 물어보고 상대의 반응을 살피더라!

내 생각은 이러하지만 상대의 생각과 반응이 어떠한지를 살피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과 사람이 일체를 이루어가는 신부차원의 세계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신부시대에 대하여 배워야 신부처럼 살아갈수 있는 것이다.

아들시대에 대하여 예수께 배웠기에 신약역사 신약인들은 구시대로부터 벗어난 신인류로서 그 삶을 2천년간 영위해 왔던 터이다.

하지만!
2천년 역사는 이미 사라졌다. 그 잔유물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서 힘겨워하는 신약역사 기독교의 모습이다.

작금에 이르러서 유대인들이 힘들어하면서 살아가고 하나님에 대한 추상만 남아서 형과 식으로 여전하게 제사를 드리며 그 신앙을 유지하고 있다.

기독교 부흥의 시대를 지난 지금 그 어디에서 그 뜨거운 사랑을 체험할 수 있을까?

이미 아들시대 역사가 2천년 기간을 통하여 흘러가버린 때문이다.

천년왕국을 논하는 핵심이 무엇인가?
천년 혼인잔치를 이야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기위해서 광야로 나갔던 것인가?

광야에서 들려오는 새시대의 소리를 들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석청과 메뚜기를 먹으면서 무엇을 외쳤었던 것인가?

정작 그는 감옥에 갇혀서 왕의 치부를 지적하다가 그렇게 끝났다.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그 한마디를 외치지 못하였다.

현 기독교는 왜 광야에서 외쳐왔던가?

신랑으로 오시는 예수를 기다렸던 것이 아닌가?
그 세마포 옷을 입고서 하늘에서 내려오실 예수를 기다렸던 것인가?

썩어진 육신이 어찌 다시 살아나서 부활하여 올수 있을까?

시대는 흐르고 시대엔 하나님의 새 뜻도 흘러가고 있다.

시대의 말씀이 시대의 복음이 길거리의 휴지조각처럼 나뒹굴고 있다.

그럴지라도 아는 사람만 깨닫는 사람만 시대를 알고서 따라가는 것이다.

삶에서 기도를 찾아라!
삶에서 하나님을 찾아라!
삶에서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어가라!

천년 혼인잔치의 역사가 그 수레바퀴가 이미 굴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