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문은 누구에게 열려있는가?
구원이란 문이 누구에게 허락된 것일까?
가나안 여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각세계를 엿볼수 있다.
마태복음 15장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지금 기독교는 구원의 문을 들어갔을까?
2천년후 다시오신다던 예수님을 영접했을까?
휴거의 구름속에서 공중에서 휴거되었을까?
기독교인중 그 누구도 휴거에 대해 더이상 언급하지 않고 있다.
공주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고
휴거의 의미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구원이란 것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3년반이란 시간이 휴거와 재림과 구원의 참된 의미를 전하기에 필요.충분한 시간이었을까?
예수께서 겟세마네동산에서 간절히 십자가사건을 두고서 기도하셨던 이유가 있었을 터이다.
암 말기환자가 어린 자녀를 놓고서 떠날 생각을 하면 얼마나 안타까움이 사무쳤을까?
그래서 그 우려대로 이러한 깊은 의미는 사도바울에게도 전해지지 못했고, 베드로는 어부라서 깨달음에 한계가 있었다.
실존의 의미를 베드로가 알수 있었을까?
그래서 예수께선 사울을 회개시키시고 실존세계의 문을 열도록 사명을 주셨던 것이다.
그런데 실존세계의 의문은 실체존재자인 예수를 통하여 풀렸어야 했건만!
이미 예수께선 부활하시어 그 육이 존재치 않았기에 곤곤했던 사도 바울이었다
이것이 지금 기독교가 휴거를 모르고 구원을 모르고 재림조차 깨닫지 못한 이유가 되었다
그래서 누가 이것을 지적하면 아킬레스건과 같아서 죽자살자 이단 사이비 괴수 등등으로 죽이려고만 한다.
이젠 그럴만한 관심 조차도 꺼져버린 촛불이 되었지만!
구원의 문이 허락되었다함은 오히려 각사람의 자유의지에 관하여 묻고 계신 것이다.
예수께선 명확하게 증거하셨다.
네 믿음이 크다 소원대로 되리라!
이처럼 구원의 문이란 자유의지의 문제다
자유의지란 그럴만한 상황과 여건과 교육/학습이 필요한 영역이기에...
가장 합당하게 구약 4천년을 보내온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배워온 이스라엘 족속에게 구원의 문이 허락되었던 것이다.
알기에 배웠기에 그들은 자유의지로서 구원의 문을 열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를 않았다.
이 시대도 그러하다.
구원의 문을 열수 있지만 이 시대 기독교는 자유의지로서 구원의 문을 저버리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공중은 지구공중인 이 땅이 아니며
그들이 말하는 불심판은 말씀의 불이 아닌 타오르는 유황불이고
그들이 본그대로 오리라던 예수는 하늘로 올리우신 그 하늘에서 온다고 믿고 있어서, 땅에서 태어나서 여자의 몸을 통하여 낳으시고 성장하여 오신다는 평범함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번 썩어진 육신은 다시는 부활하지 못하는데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와 살이 하나되는 역사 초자연적인 역사를 주장하고 있다.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왜 유대인은 못보던 것을 가나안 여인은 보았던 것일까?
그 어떠한 점이 구원의 문을 열수있게끔 그녀에게 자유의지를 발동시키게 하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