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의 지평선
사람은 우물안 개구리로 자라난다. 자연생태계의 모든 생물들도 그러하다.
어미곁을 맴돌다 성장하면서 점점 활동반경을 넓혀간다.
어릴적 필자도 산골에서 태어나 해질녁 태양이 지는 지평선 너머로 굽이굽이 산등성이 첩첩산중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곤했다.
무엇이 있을까? 저 너머엔.
누구에게 묻지도 않았다. 내 기억으론 국민학교 1학년때 처음으로 완행열차를 타고 13시간 걸려서 서울 외갓집에 갔었다.
기차안에서 저너머 지평선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고 그 지평선이 끝이라고 여겼던 생각이 실제로 확인해보면서 내 생각과는 다르게 신비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내가 살고있는 산골생활과 별차이가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는 것도!
또 하나의 생각은 이러했다.
학교를 가다보면 집에서 접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보면서 신기했다.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마음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은 이미 내 인식이란 창고에 저장되었던 사실이고, 새롭게 접하게되는 사람들은 낯설었다.
마치 하나의 이벤트같았다. 내가 지나갈때를 기다렸다 반짝 나타났다 사라지는 연극상황같았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곰곰히 분석해보면 24시간 내주변에 존재하지 않았기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마음사람들처럼 항상 내주변에서 확인되어야했지만! 어릴적 생각으론 그들도 그들만의 시공간에서 존재하며 살아간다는 나름의 철학적 사고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학교 1학년때 7살 나이로 처음으로 학교를 가는데 아버지께서 나에게 본인의 이름을 선생이 묻거든 말해주라며 아버지의 이름을 처음으로 가르쳐주셨다.
산골 촌부로 생업에 바쁘시다보니 한글을 가르쳐주시긴 하셨지만 정작 본인의 이름 석자를 가르쳐줄 생각을 못하셨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자전거에 타고서 학교에 갈때까지 처음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반복하며 갔었다. 그리고 기대대로 처음 접한 선생님께선 아버지 이름을 물어보셨다.
내가 자신있게 대답하자 선생님께선 똘똘하다고 칭찬해주셨다. 다른 아이들은 물어도 대답을 못하는데 기특하다고 칭찬해주시자 곁에 아버지는 흐뭇해하셨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있던 해였다. 사실 아버지께선 서울 명동이발사를 하셨었고 시골 고향마을에 와서 그때 갓 도입되었던 연탄보일러를 처음으로 시공해서 사용하셨을 정도로 문물에 밝으신 분이셨다.
보일러 시공을 처음으로 하는 아버지에게 고향사람들은 저 시커멓게 생긴 연탄한장이 무슨 화력이 있겠냐며? 비웃었다고 하셨다.
그런데 구들장이 펄펄끓어대는 것을 체험하시고는 다들 자기네것도 해달라는 통에 이곳저곳으로 불려다니시면서 코치해주셨다고 한다.
그만 각설하고 우리들이 지닌 순수한 그리고 때론 열정적이기까지한 인식의 지평선은 현재 어떠한 모습일까?
어릴적 해지는 산 너머를 바라다보던 그 순수함의 인식일까? 아니면 차를 타고 가면서 바라보았던 현실인식일까?
그도 아니면 반신반의 하면서 연탄보일러를 시공하던 시골 촌부일까?
우린 현실에서 부시맨같은 경험을 하곤 살아간다. 아프리카를 비행하던 조종사가 코카콜라를 다마시고 비행기너머로 빈병을 던지자 원주민이 그 빈병을 주워들고 눈을 가져다대고 하늘을 바라보던 그 장면속 주인공일까?
도에서는 도를 도라 부르면 이미 도가 아니다란 말을 자주쓴다.
왜 그렇냐고 묻지를 말란다 그냥 네가 몸소 체험하며 깨달으라고 한다.
그것은 사람의 인식이란 자기마음의 굴절이기 때문이다.
빛은 물속을 투과하면서 꺽이고 굴절하게 된다.
사람의 마음은 바로 그러한 물과 같다. 같은 현상을 바라보면서도 사실과 다르게 천차만별로 해석을 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건을 놓고서도 피해자가 겪은 사실관계와 검찰이 인식하는 사실관계 그리고 법의 잣대를 공정하게 들이대는 판사가 인식하는 사실관계가 다르다.
성경말씀엔 주는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심판치 않으신다고 하셨다.
진리를 전하는 자는 인식의 지평선을 수도없이 넘나들며 깨닫는 것이다. 그러할진대 온세상을 구원하러 온 구세주가 나사렛이란 고향마을 인근에서만 나고 자라면서 온세상 사람들을 구원할 진리를 깨달았다고?
너무도 순진한 생각이다. 성경엔 예수님의 어릴적 사생애 기간 기록이 없다. 그것은 소문이라도 있어야 할진대 없다는 뜻이다.
나사렛 저멀리로 세상을 떠돌면서 경험하셨다는 반증이다
티벳 경전기록엔 예수님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벽안의 푸른 승려가 수도를 하고 갔다는 내용이다.
물론 예수님일지 아닐지는 진실게임이겠거니와!
그당시에 동서양의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서양엔 사람의 마음에 대한 용어표현이 빈약하다
그렇다는 것은 마음에 대해 제대로 익히고 배울수 있는 환경이 빈약하다는 뜻이니! 인식에 가장 중요한 화두인 마음을 배우기위해서 그 머나먼 티벳까지 수도의 길을 가셨다는 의미이리라!
성경 말씀중 최고 백미중 하나가 마음밭 비유인 것이다.
사람의 인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업을 하던 학문을 탐구하던 자녀를 교육하던 부부사이에 대화를 나누던지 우리는 늘 진리의 문제와 직면하고 있을을 우리는 깨달아야한다.
진리와 공존하면 인식의 지평선을 넘을수 있고 공존하지 못한다면 인식의 혼돈속에서 흑암이 깊음위에 있음에 만족하며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