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시인의 꽃 이란 작품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주종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 주체적인 만남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인식이란 테두리 안에서는 바로 사랑이 싹트게 되는 것입니다.
눈이 맞았다고 표현을 합니다. 또는 눈에 띄었다고 합니다.
수많은 존재들 중에서 누군가 누구를 인식하고 그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바로 사랑일 수 밖에 없습니다.
아버지가 자녀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의 목적은 심부름 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랑을 표현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여보! 하고 부르는 것은 나 밥차려줘! 이런 뜻이 아니라!
사랑하는 당신의 이름을 불렀어! 나에게 관심을 좀 가져주면 좋겠어! 이런 속마음이 있습니다.
헌데 부부가 좀 살다보면 이런 말들을 합니다.
귀찮게 밥을 사먹고 들어오지! 나도 피곤한데..
하나님! 하고 부르는 것은 [ 사랑합니다]의 표현인 것입니다.
내 사랑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뜻이죠!
서로 사랑하니까! 기도로 대화를 합니다.
대화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 서로를 챙겨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성경엔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는 구절이 나옵니다.
창세기 3장
8.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아담이 죄를 지었다고 바로 심판을 하시진 않았습니다.
아마도 회개할 기회도 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낯을 피하여 숨어 버렸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까지 사랑으로 대하시며 그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담이 누구입니까? 바로 오랜 인류창조를 통하여 처음으로 하나님과 대화가 될수 있는 그러한 대상이 아니였을까요?
하나님이 얼마나 마음이 급하셨냐면..
창세기 2장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자기가 창조한 세계들을 사랑하는 자에게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자유의지에 기반한 인식의 세계를 인정해 주셨습니다.
상호주체적인 만남의 관계를 비조영인 천사들과는 갖지를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창조하고, 자유의지를 부여하셨습니다.
서로가 주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의 세계를 열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에 나는 누구의 하나님이니라! 하십니다.
사람들에게 인식된 그 사랑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싶으신 것입니다.
창세기 26장
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인식행위는 사랑의 행위이며, 그 사랑을 통해서 창조의 역사를 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라는 구약의 성경은 인간과 하나님의 깊은 사랑의 세계를 기록한 것입니다.
아담부터 아벨,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세밀히 기록해놓았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이해하고, 인식해가는 과정과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서 인식해가며 깨달아가는 과정이 드러나있습니다.
실례로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나누는 대화를 보면 잘 알수 있습니다.
창세기 18장
1.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10. 그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20.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21.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하노라
22.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23.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24. 그 성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25.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2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32.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십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
이 구절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선 인간과 상호주체적인 인식의 기반위에 사랑의 역사를 펴고 싶으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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