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도를 추구하는 동양의 영계개념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간다.
그것을 논하기 전에 먼저는 영의 세계라는 것이 어떠한 하나의 질서를 이루고 있음을 인지하고 접근해야 한다.
기독교는 천국이라는 개념을 두고서 거기서 떨어져서 타락하면 지옥에 간다고 한다.
단순하게는 예수믿음 천국/ 예수불신 지옥을 주장한다.
반면에 동양의 도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다양한 영들의 세계를 논한다.
지상의 영계에 속하는 세계를 다루기도 하고, 하늘의 영계에 대하여 다루기도 한다.
쉽게 말하면 차원급에 따라서 스스로 영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고들 논하는 것이다.
무당들이 다루는 영의 세계는 거의 지상영계에 속하는 귀신들린 영들의 세계를 말한다.
도의 세계에선 그러한 지상을 벗어난 차원높은 세계를 논한다.
그렇다면 기독교와 도의 세계는 왜 이리 다른 접근법을 가지는 것일까?
그 핵은 메시아를 믿느냐? 따르느냐? 의 여부에 달려있다.
기독교는 구원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
구원과 천국은 동일한 개념이다.
구원없이 천국에 이를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선 다양한 영들의 세계를 경험하셨을 것이다.
지상의 영계로부터 천상의 영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섭렵하셨을 턴데!
천국이란 개념만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필자는 영의 세계를 육적 영계, 혼적 영계, 영적 영계의 세 부류로 인식해보고자 한다.
그중에서 비중있게 다룰 부분은 혼적 영계이다.
영적 영계란 주로 비조영인 천사들의 영계를 일컫는 것이다.
인간과 관계되는 부분은 바로 육적 영계와 혼적인 영계다.
모세를 믿고 따랐던 사람들과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사람들의 거하는 영들의 세계가 같을까?
만약에 같다면? 굳이 신약의 예수께서 오셔서 말씀을 전하실 필요가 있었는가?
다르기 때문에 예수께 하신 일이 있다.
영옥에 가셔서 그들에게 시대의 말씀을 전하신 것이다.
구약인들의 영은 옥에 있었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승천하시고 곧바로 옥에 들리신 것이다.
먼저는 육있는 자이기때문에 지상에서 역사를 펴셨던 것이고, 육신을 벗어나선 영의 세계로가서 복음을 펴신 것이다.
옥이란 갇혀있다는 뜻이다. 제아무리 모세를 믿고 따랐어도!
메시아의 말씀이 없었기에! 옥에 갇혀있는 것이다.
천국의 문은 메시아만이 열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은 영들만 예수님을 따라서 낙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헌데 육신쓰고 직접 대면하면서 말씀을 전해도 반대하고 배척하는데, 영으로 만나서 말씀을 전하면 더 쉬울까?
결론적으로 쉽지않다.
영이란 생각체다.
사람은 마음체, 정신체, 생각체로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지만!
사후엔 생각체만 남게 되어서 고집(사상)이 무척 쎄진다.
아마도 그곳에서도 예수님께 반대하는 영들이 있었을 것이다.
따르는 영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게 쉽다면 굳이 육신쓴 메시아가 이 땅에 와서 직접 복음을 전하였을까?
이치라는 세계가 그렇다.
사람의 몸이 사라지면 생각만 남게된다. 그 생각속엔 느낌이 없고 기억만이 남는다.
느낌이란 사람의 생각에 탄력을 줄수 있다.
사람은 적일지라도 만나서 악수를 하게되면 느낌이 오고간다.
그러한 느낌으로 다가서는 것이다.
왜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을까?
바로 그러한 생활속의 느낌의 세계로 다가서라는 가르침이다.
섬기다? 그 섬김의 핵이 무엇일까?
사람이 말씀의 칼로 심판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다.
하지만! 구원! 구원의 세계를 생각한다면 그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사랑의 세계는 느낌의 세계다. 그 느낌으로 다가서는 것이 사랑이다.
사마리아 여인을 바라보시던, 삭개오를 바라보시던, 부자청년을, 거지 나사로를 그리고 간음한 여인을 바라보시던 그 느낌의 세계!
요한복음 8장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요한복음 8장
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마가복음 9장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또 다시 땅에 글을 쓰셨던 내용이 무엇일까?
사람은 몸으로도 죄를 짓지만! 마음으로도 죄를 짓는다.
눈을 빼어버려야할 범죄란 무엇일까?
누가복음 17장
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인자의 날 하루를 보기 위해서는 그시대 같이 태어나야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를 제대로 믿고 따를때에야 가능한 것이다.
모세와 수많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했었다.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구원과 그 인자의 강림을 학수고대했던 선지자다.
그럼에도 그는 그리스도와 같은 시대에 태어나지 못해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 못했다.
여기서 말씀에 대한 오해를 짚고 넘어가보자!
말씀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란 테두리에서 나오는 것이 말씀이다.
신이 인간의 몸을 쓰고서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인식하며 가르쳐주시는 것이 말씀인 것이다.
쉽게 말해서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이렇게 생각하면 더 이상적이다. 등등!
하늘 나라의 보좌에서 이러하니라! 저러하니라! 라고 계시해주시는 것이 말씀이 아니라 시대 사명자의 입을 통해 선포되는 것이 말씀인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영의 세계도 시대급에 따른 구원의 차이가 존재한다.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12사도들이 간 영계와 예수님을 기다렸던 구약시대 사명자들이 간 영계가 다르다.
또 하나님을 믿었지만!
예수님과 같은 시대에 태어나 불신했던 유대인들의 영계는 말할 것도 없다.
왜냐?
영들의 세계는 생각실상의 세계라서 생각이 다르면 같은 차원계를 구성할 수 없는 이치인 것이다.
사람은 각자의 육신이 있지만! ( 그래서 인간을 소우주라고 함! -- 개별된 독립세계 )
영들은 육신이 없다. 육체가 없다는 것은 그들이 거할 처소가 반드시 있어야함을 의미한다.
이것이 영의 세계가 천층만층으로 존재하는 이유다.
인간은 70억이라는 숫자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마음이란 실존세계가 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도인들의 영계는 깨달음에 따라서 각자가 그 차원대로 도급에 맞게 영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
백두산 산신령, 태백산 산신령 등등 운운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그것은 지상영계일 뿐이다.
그런 영들은 도에 미치지 못한 저급한 영들이다.
통틀어서 무당영계라 부른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선한 영들의 세계를 통틀어서 선영계라 부른다.
여기까지만 다룬다.
좀더 궁금한 부분들은 시중에 나와있는 영의 세계에 대한 일반론들을 참고해보면 상식과 이치의 선에서 깨달아 갈수 있다.
만류귀종 [萬流歸宗]
세상의 이치란 다 연결되어 있다.
도인들이 죽어서 가는 곳이 따로 있고, 기독교인들이 죽어서 가는 영의 세계가 따로있다.
부처를 믿는 사람들이 가는 영계도 따로 있음은 물론이다.
영계의 창조이치를 알려면 영계의 존재이치를 깨닫고 배워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한 틀 안에서 여러 종교와 기독교의 영계를 비교.분석해보면 하나님이 영의세계를 창조한 그 이치를 알수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이 땅도 피조영계라 부르니 이는 피조영인 인간들의 세상도 영의 세계라는 뜻이다.
영이란 영원성만을 뜻하는 개념이 아니다.
영이란 인식의 선상에서 생각할수 있어야한다.
나에게 영원한 것은 당신과 당신의 사랑이라고 표현하면 그 또한 영이다.
영이란 상대성의 존재를 의미한다.
양에게 음은 영원하고, 음에게 양은 영원한 이치다.
인간에게 하나님은 영이시지만!
하나님에게 인간 또한 영인 것이다.
영이란 상대적 이치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모든 개념은 차원성을 더할때 더욱 심도있게 느껴지고 깨달아지는 것이라!
좀더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좋겠으나! 능력의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원래 영적 개념을 풀어서 이해시키기란 지난한 일이며, 그게 그리 쉽다면 예수님때 유대인들도 모두 말귀를 알아듣고 다 구원을 얻었으리라!
깨달음의 끝자락을 잡을수 있다면 유쾌할 것이고, 부족하다면 그 곤고함이 자신의 내면에 있는 탐구의 열정을 일깨우는 기회가 될것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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