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사랑이란 서로가 남남으로 만나서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을 사랑이라하고 사랑한다고 표현한다.
몸이 따로인 것을 어찌 하나가 되어간다고 하는 것인가?
부부는 일심동체라 한다.
자녀를 낳아서 기르고 가정을 꾸려나가는 마음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의 성격과 생각이 분명하지만!
가정의 유지와 평화를 위해서 기꺼이 감수하는 삶이지 않은가?
신과 인간은 어떠한 만남을 통해서 사랑이라는 깨달음에 다가서는 것이다.
그러다 정말로! 사랑을 하게 된다면 영적인 사랑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기도 한다.
굳이 성직이라는 사역을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인간으로서 신에게 다가서는 것은 영적인 본능에 가깝다
영혼의 존재이기에 신을 찾게되고, 느끼고 깨달아가면서 신과의 사랑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다르게 보면 인간의 사랑!
부부의 사랑이라는 것도 이처럼 서로를 만나서 부대끼고 느끼면서 서로에 대해 알고 깨달아가는 부분들이 있어서 일체적 사랑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헌데 어느순간 어떠한 사건이나 상황적 변화에 따라서 서로에 대한 생각이나 감정이 시나브로 옅어지면서 사랑보다는 일상이라는 형과 식에 치우쳐서 살아가다 결국에는 처음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요한계시록 2장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부부도 그러하다.
뜨겁게 사랑하여 가정을 꾸리고 노력해왔던 과정을 망각해버리고 얻어진 것들에 더 집착하다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걸림돌이 되어 사랑에선 더욱 멀어지게 되나니!
구약의 율법이란!
구약의 율법은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에게 나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였으나!
유대인들은 그 율법이란 통로를 통하여서 어디에 도달해야 하는지를 생각치 못한채로 4000년을 흘러온 것이다.
종국엔 신약의 역사가 흐르고 6천년 역사가 흘러간 지금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차원과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차원엔 큰 차이가 없다.
무당이 떡과 고기를 놓아두고 무속신앙을 하는 것과 유대인들이 제단을 차리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에 어떤 큰 차이가 있을 것인가?
사랑하는 독생자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에게 기대하는 어떠한 뜻이 있을까?
아들개념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따르지 못했던 것이고, 그런 결과로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신약시대의 휴거란 예수그리스도를 맞이하는 것이 휴거의 역사였다.
그리고 예수께선 성경에 기록된 대로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는 것이 장차 다가올 혼인잔치 휴거역사임을 말씀하셨다.
신약의 역사 또한 그러하다. 1천년이란 천년왕국이란 기회의 시간이 다 흐르고 나면 제대로 휴거를 맞이하지 못한 영혼들은 전혀 다른 존재로 남아지게 된다.
영혼이라함은 그 기간안에 이땅에 태어나서 명멸하는 모든 인류를 지칭함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일 먼저 하신 사명이 옥에가서 하나님을 믿어왔던 영들에게 시대복음을 전하신 일이였다.
역사는 동시성이다.
사랑! 사랑이라 하였다.
사랑의 혼인잔치! 휴거의 역사! 그 기간이 1천년인 것이다.
그 기간이란! 육의 세계에서 1천년이 흐를때 동시타이밍에 영의 세계에서도 흘러간다.
천년 혼인잔치란! 전 천년 / 후천년 이라고 표현을 할 뿐이다.
영적인 말귀를 알아듣기 위해선 영적 마인드로 다가서야한다.
영따로 육따로 바라보면 영원히 평행선인 것이다.
신약에 예수님을 인식함에 있에서!
영따로 하나님과 육따로 예수님을 각각으로 보고 인식했기에!
신약따로 구약따로 하나되지 못한채 전혀 다른 역사로 남아진 결과이다.
성령의 귀있는 자들은 깨달을 것이라!
전혀 다른존재가 되어간다는 것이란!
차면 기울듯!
대적함이 극에 치닫고 나면 차후엔 서로가 서로에 대한 한올의 감정마저도 / 생각마저도 남지 않게되는 이치를 이르는 것이다.
구약과 신약의 역사도 2천년이 흐르고 나니! 이젠 서로 소닭 보듯이 하게 되었다.
구약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주장하지도 않고!
신약인들에게 유대인들이 와서 그들의 사상을 주장하지도 않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진 것이다.
그 뿐이랴?
아브라함이 뿌린 씨앗이였으나!
이삭과 이스마엘의 후손들도 또한 전혀 다른 존재로서 서로를 바라볼 뿐이다.
같은 하나님을 믿는 입장이지만!
전혀 다른 존재들이 되어간다는 것은 자연스레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져 대적해온 사단과 무엇이 다를까?
시대 중심인물의 역사를 인정하고 맞이하는 것이 구원의 시작임은 두말할 것이 없다.
예수께선 묻기를!
너희는 나를 누구라하느냐?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기를!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예수께선 그에 말씀하시기를!
마태복음 16장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베드로가 아들 개념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보시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 아들개념을 그리 쉽게 이해할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또한 심정 모른채! 그시대 대제사장이란 작자가 하는 말이!
마태복음 27장
40.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아들 개념에 대한 무식함이 저러했다.
아들이라면 무조건 육으로만 생각했다.
신인류를 영적창조하는 예수그리스도의 역사를 몰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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