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인간의 대화란 어떠한 것인가?
유명한 고승들은 화두 한마디를 던지고 사람들은 그 한마디를 두고두고 묵상하고 되내이며 그 의중을 헤아려간다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
성철스님이 임종전에 남긴 한마디라고 하는데..
김수환 추기경께선 [서로 사랑하세요! ]
이 한마디를 남겼다.
사람은 육신의 일이 있으며, 영혼의 일이 따로 있는 것이고, 인생의 문제도 그와같음을!
대화란 차원이 되어야 서로 소통이 가능한 것이다.
아무리 낮은 곳으로 흐른다 할지라도!
인간 노력의 과정이 없이는 소통이 될리가 없다.
아담.하와에게 따먹지 말아라! 그 한마디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과 소통하지 않으셨다.
일방적으로 선지자에게 한마디씩을 전하실 뿐이었다.
그러한 구약 4천년의 전반을 신약의 사명자가 꿰뚫어 보고서 한마디를 화두로 복음을 전하것이다.
신의 한마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 4천년이나 필요했던 것이다.
예수님이 창세기 특강이라고 명시적으로 12사도에게 말씀하시지는 않으셨다.
하지만!
아담.하와가 타락한 원인이 무엇이고, 사단은 왜 개입해서 유혹하고 타락시켰는지를 깨달으신 것이다.
영의 말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천사와 인간이 다른점이 무엇인지를 살피셨을 것이고, 수많은 하늘 천사들이 있음에도!
왜, 하나님께선 인간을 창조하셨는지를 파악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것을 확실하게 깨닫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새역사의 이정표임을 확증하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아들이다!
나를 보아라! 믿어라! 그리고 들어보아라!
그러면 너희들도 아버지를 보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너희들의 아버지가 하나님이시다.
너희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종이 아니다! 언제까지 종! 종! 운운 할것이냐?
그러한 너희들의 죄의식은 구약 4천년 율법으로 구속되고 속박되어 왔느니라!
누가복음 16장 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예수님의 중요한 말씀 선포중 하나다.
율법으로는 더이상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한다.
요한까지가 마지막이다.
나는 요한의 뒤를 이어서 왔다.
새로운 것을 가지고 나타났다.
바로 아들의 권세다. 나는 종이 아니다.
인류로서 처음으로 아들이 되었다.
너희가 아들이 되는 권세를 얻으려면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이다.
제자들은 이 아들됨의 권세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혜택인지를 몰랐다.
마태복음 20장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아들이면 다 같은 아들인 것이다.
종이라고 불리우다가 아들로서 대하니!
이 얼마나 대단한 권세인가?
또 예수님의 아들됨의 권세가 어떠한 시험과 연단속에서 이루어진 결과인지를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마태복음 4장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6.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천사들이 나와서 수종드니라! 이 구절이다.
수종을 드는 것은 종의 권세이고, 수종을 받는 것은 아들의 권세에 해당되는 것이다.
예수님 고생하셨습니다. 이런뜻이 아니다.
그런 생각이 인본주의이며, 그런 사고 자체가 영의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다.
신약성경 처음부터 끝까지 아들의 개념 하나를 장황하게 풀어놓은 것이다.
그만큼 아들이라는 신의 한마디를 알아듣기가 힘이 든다는 방증이다.
아들? 예수님! 독생자! 전능자!
이런 생각차원에 머물러 있으면 하늘과 대화가 될수 있을까?
이 개념을 제대로 깨달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하늘과 나누는 대화의 차원이 같을수 있을까?
아들을 마스터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음 차원인 휴거의 혼인잔치에 대한 개념을 어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목적지이고, 종착역인 것을!
구약 유대인은 영원히 종으로 남아지고, 신약 기독교는 종과 아들의 경계선에서 햇갈려 하고 있으니!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사도들도 당대에 아들을 만나고서도 아들개념을 깨닫지 못했는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누가복음 17장
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정작 인자 당사자인 예수께서 이런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하실때의 그 속심정은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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