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거를 정의해보려한다.
삶이 휴거되었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는 삶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아이를 둔 유부녀가 50이 넘어서면 아이들도 커가고 남편도 사회에서 어느정도 성취지위를 가져간다.
이때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곤 무엇이 나에게 남아있는가?
그런 생각들이 쌓여만 갈때에 휴거라는 단어를 만났다.
휴거가 되면 처녀의 몸으로 다시 태어날수 있다는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일생을 살아오다보니 어느덧 60의 나이에 다다랐다.
해놓은 것이 눈에 차지않는다.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망상도 든다.
휴거!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게 된다는 그 휴거!
성경의 기록된 그대로 마른 뼈와 살이 하나되는 역사의 그 휴거!
휴거된 최초의 인류를 꼽으라면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는 다시오리라던 엘리야가 살아난 것도 아니고, 모세가 다시 살아나서 온 것도 아니었다.
마음의 근본자리!
도에서는 그런 차원에 이르는 것을 휴거로 볼수 있다.
사람은 육신의 존재이고, 육체활동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 느낌들의 세계는 마음이라는 그릇에 오롯이 담겨진다.
추억이 되고, 기억이 되어서 생각을 이루게 된다.
그 과정엔 정신의 세계가 일어나서 차원적 세계의 깊이를 더하는 것이다.
신은 인간을 차원적 존재로 창조했으며, 신은 인간과의 차원적 교감을 나누고 싶으신 것이라!
그 차원세계의 핵은 당연 사랑이다.
그것을 휴거의 혼인잔치로 비유하셨다.
하여! 그 휴거의 사랑에 이르기 위해서는 차원적 사고가 활성화 되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남녀가 서로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더군다나 국적이 다르다면?
서로의 모국에 대한 의식주의 기본 식생활을 배워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그 나라의 상식을 이루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신과의 사랑은 신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예수께선 그러한 영의 세계에 무지한 자들의 질문을 받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2장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31. 죽은자의 부활을 의논할찐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바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이처럼 성경을 통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닫기 위해서는 육으로 바라만 보는 기존의 틀(인식)을 벗을수 있어야 한다.
성경엔 휴거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나와있지만!
영의 말귀를 알아듣지를 못하면 천년이 흘러도 그 상태에 머무는 것이다.
왜 옥에 있는 영들이 구약 4천년이 지나도록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을까?
육신을 떠난 영혼은 마음이 살아있는 자의 그 마음이 아닌 것이다.
굳어진 마음이 4천년을 지나도록 변함이 없는 완성체인 이유다.
영의 세계는 양자의 세계다.
한계에너지 안에서 똑같다.
변화요인이라는 강한 충격에너지가 없이는 그 한계 에너지상태에 머무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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