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구약이 4천년동안 지속되었을까?
구약 4천년/ 신약 2천년/ 새역사 1천년 도합 7천년!
일주일을 축소 확대시킨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하늘의 역사라서?
뜻으로 보면 그러하고, 인간의 책임으로 보면 좀 달리 생각해볼 여지가 존재한다.
물론!
절대예정이냐? 상대예정이냐? 의 논점을 건드리고 다루어야 할것임을..
그러한 복잡한 신학적 요소를 제쳐두고서 기본의 상식선에서 다가서본다면 어떠할까?
사람이 없었다. 생각의 굴레를 벗어나서 생명의 길을 이끌어줄 사람이 없어서 메시아가 와야 했던 것이다.
종의 시대란 무엇인가?
그시대 인간이란 동물과 크게 다름없는 존재였다.
인간이 인간을 소유하고 짐승부리듯 부려먹던 시절이었으니!
그러한 야만의 시대를 벗어나도록 시대의 말씀을 가지고 온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서 구약 종들의 역사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예컨데 사람은 본래 그렇게 부려먹으라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뜻이 아니다.
사람의 본질은 그사람의 타고난 지위와 외형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마음이다.
마음밭이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생각이 그 마음밭에 말씀의 씨앗으로 떨어져서 여러상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옥토밭도 있고, 돌짝밭도 있고, 가시덤불같은 마음도 있는 것인데!
이러한 상태를 알아야만 거기에 맞게 말씀을 주고 가꾸고 변화시켜 갈수 있는 것이다.
힘이 좋다고 잡아다가 소처럼 부려먹지만 말고!
예쁘다고 데려다가 몸종으로 써먹지만 말아라!
사람의 본질은 바로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이다.
그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불이 붙어야하고.
그다음엔 형제에 대한 사랑으로 불이 붙어야한다.
성경을 읽다보면 아들이 하는 일과 아들의 권세에 대해서 기록된 구절들이 나온다.
마태복음 9장 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 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아러한 행동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하는 행실인 것이다.
아들된 권세가 이러하다.
아들은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키는 역사를 펴는 것이다.
구약 종들의 역사에선 세리와 죄인들은 배척의 대상일 뿐이였다.
하지만, 아들된 역사는 달랐던 것이다.
이사야 42장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이것이 바로 아들됨의 권세인 것이다.
권세! 권세? 무엇이 권세일까?
영의 말귀를 잘 알아들어야 한다.
아들만이 할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아들됨의 권세인 것이다.
아들에게 배웠으니! 너희도 아들이 되어서 살아가라고 예수께선 가르치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 권세를 직접 몸으로 행동으로 보여주셨던 것이다.
종은 아들을 알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종의 권세로는 감히 주인에게 함부로 나아가지도 입을 열수도 없는 경외함의 권세뿐인 것이다.
그러한 종된 인식은 아들역사와 아들의 개념을 깨닫지 못했다.
종을 보고 배우면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아들을 보고 배우면 아들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선 인류가 종으로 살아온 4000년의 세월을 지켜보셨고, 아들로 살아온 2000년의 시간을 목도하신 바다.
그리하여 혼인잔치 휴거의 역사를 통하여 펼쳐질 천년왕국의 역사에 기대섭리를 펴실 것이다.
그 사랑에 다가서는 것은 바로 시대 생각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이다.
물에 빠진 자가 구해줄수 없을 뿐더러 자신도 빠져나오기 힘든 것이 바로 생각의 굴레인 것이다.
지옥도 생각에서 천국도 생각에서 만들어져서 가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란 창조의 세계로서 실존의 세계다.
마음에서 종이되고,
마음에서 아들이 되고,
마음에서 신부도 되는 것이라!
예수께선 사람의 이 마음됨의 세계를 가르치시고 깨우쳐 주시려 오신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셨고, 시대 메시아는 인간의 마음을 바로 잡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창세기 6장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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