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따라 사랑의 차원이 높아지고, 그 핵에 다가설 수록 모든 만물과 환경들이 그 핵으로 말미암아 더욱 하나로 뭉치게 되는 것이 이치다.
구약의 종들이 사랑을 하였다.
그 종들은 금송아지를 만들고 하차원적 사랑으로 하나님을 대하려 하였으매!
여호와께서 내 형상을 만들어서 우상으로 숭배하지 말아라! 말씀하신 것이다.
사랑이란 그 구약속에서 외식과 형식으로 흘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차원을 높여야했으니!
그것이 바로 신약역사 아들의 사랑이였다.
아들이 바라보는 대제사장과 신실한 유대인들의 사랑이라는 것은 지극히 종의 그것이였다.
큰 길가에서 기도하고, 성전에 제물을 드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였다.
종의 사랑은 모든 만물과 사람들을 종으로 대하는 것이였다.
주의 종을 뵈오니 너무 큰 영광입니다.
주의 종이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종들은 주인된 권세가 없었다.
내 소유가 아니니 빌려서 허락받고 사용하는 세상속에서 살다가 갔다.
종이 무슨 생각이 있었을 것인가?
그 타성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 갖추어진 것, 유전으로 전해지는 율법들에 대해 신실할 뿐이었다.
그러하니!
믿음과 사랑이라는 단어에 무지했으며, 그 핵심인 하나님 사랑에 겉돌기만 하다 4천년이 흘렀던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약 율법이란 행하면 행할수록 허전하고, 마음속 실체가 없는 신기루 같은 것이였다.
예수께선 몽학선생이라 칭하셨다.
꿈에 대해서 풀어줄 수는 있지만, 현실속에서 깨우침을 주기에는 역부족이였다.
그래서 율법을 완전케 하러 오셨다고 하신 뜻이다.
다니엘 선지자는 그때가 언제이냐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하나님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나서야 예루살렘의 회복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다니엘이 간구한 그 회복이라는 것 또한 외식과 형식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간구한 것이였으니!
하나님께선 아들 구원역사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으셨다.
삯군이 뜻하는 것이 어떠한 의미일까?
바로 종이다. 삯만 챙기면 되는 일꾼이다. 그것이 종이다.
아들이 없으니! 종을 사서 일을 시킨 뜻이다.
충성하면 종을 아끼기도 할 것이다.
결국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이 신약역사에 들어서서 아들이라 주장하는 한 사람에 의해서 그 본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선 외식과 형식의 테두리를 벗어버리고서 사랑으로 하나님을 대하라 하신 것이다.
그 사랑을 핵으로 바라보고 대하며 서로를 사랑하라 가르치셨다.
원수도 사랑하고 70번씩 7번이라도 용서해주고!
신약성경의 핵심 단어중 하나가 사랑과 아들이다.
사랑이 있기에 아들이 될수 있는 것이고, 아들이기에 사랑을 가르칠수 있는 것이다.
유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라 칭하는 것을 두고서 참람하도다! 역정을 냈다.
사랑이 무엇인지를 몰랐다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감히 쓸수가 없었다.
종이 어찌 주인에게 사랑이라는 말을 할수 가 있었을까
마태복음 3장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내 사랑하는 아들 = 내 기뻐하는 자
신약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내 기뻐하는 자가 바로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선포하신 것이다.
역으로 해석해보면!
그 기뻐하는 행위를 하는 자가 바로 사랑하는 아들이 된다는 의미다.
아들이 아무리 어릴지라도 부모는 아들의 행위에 기뻐하는 것이다.
갓태어난 아이가 백일이 지나고 옹아리를 시작하고, 더 자라면서 아빠! 엄마! 부르기 시작한다.
그러한 행위가 부모에게는 기쁨인 것이다.
성경엔 예수님이 어린 나이에도 하나님께 어떻게 아들의 행위로 기쁨을 드렸는지 나온다.
누가복음 2장
43.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44.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45.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48.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49.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50.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51.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52.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신약역사를 통해서 사랑역사의 차원이 올라간 것이다.
신약
육의 언어로만 생각하니!
육신으로 온 메시아를 육신이 없는 하나님과 무리하게 연결시켜서 그 육신이 동굴에서 부활하여서 하늘로 올라갔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육신이 다시 온다고 믿는 것이다.
사람의 핵은 형이상학적으로는 마음이고, 형이하학적으로는 뇌이다.
마태복음 17장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13. 그제야 제자들이 예수의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그 심정과 사명으로 다시 오는 것이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겐 하나님의 심정과 사명으로 오신 것임에도 그것을 놓친 것이다.
이젠 사랑에 대한 의미가 정미하게 정의내려질 때가 된 것이다.
사랑의 정의에 따라서 구약과 신약이 갈리었다.
그리고 구원도 갈리었다.
사랑의 세계는 이와같다.
사랑을 모르거나 잊어버리면 남이 되는 것이다.
사랑의 존재의미를 유지하려면 차원을 높여야 하는 것이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갈아타야 하나님과의 사랑이 유지되는 것이고, 그 사랑으로 새시대 구원도 얻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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