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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를 넘어서

인류가 지적인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주선을 쏘아올리기까지 그 노력과 열정이란!

달나라엔 토끼가 살고있으며, 그 토끼란 인류에게 영감을 주는 소재였다.

현실이 너무도 고된 삶이였기 때문일까?

눈에 보여지는 실체로서 평화로워 보이는 세계에서 토끼처럼 알콩달콩 살아갔으면 하는 바램일 것이다.

그것이 이제는 화성프로젝트로 바뀌어서 새로운 이상세계를 구현해가고 있다.

언젠가는 100년 뒤일까? 그때쯤엔 화성의 대기와 토질을 바꾸는 창조프로젝트가 가동되어서 인류가 살수있는 환경이 될수도!

이처럼! 인류가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 생각하고 노력한 것들이 실체로 다가오는 것이다.

구약의 역사!

너무도 혹독하고 고난한 삶이였다.

하나님을 종의 입장에서 모시고 섬기고 그 사명을 행하는 일들이라는 것이!

선지자들은 말 한마디에 옥고를 마다하지 않고 생명을 불사르면서 외치는 역사를 펴나갔다.

생각이 통하지 않고 말이 통하지 않은 사망속 인류에게 가끔씩 동아줄을 내려주시는 역사가 있었기에 인류는 인간의 존재 한계치를 벗어나지 않고 인간의 범주안에서 존재해 올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행하신 이유가 있으니!

생각의 세계란 한번 벗어나기 시작하면 전혀 다르게 존재해가기 때문이다.

동성애!

이것은 인간이 한번 벗어나서 생각하기 시작하다보니!

제 3의 인류가 생겨난 것이다.

음과 양의 이치란 창조법칙인 것인데도 그 창조법칙을 생각으로 벗어나려는 것이다.

몸은 남자인데 영들린 사고로서 여자로서 존재해가려 하는 것이고, 몸은 여자인데 남자로서 존재해가려는 몸부림인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한번 행하기 시작하면 중지시킬 수 없기에 미리 막으시는 것이다.

창세기 11장
4.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무리가 한 족속이고, 언어도 하나라는 것은 생각이 같다는 의미다. 추구하는 바가 같다는 것이다.

영의 세계에선 루시엘/가브리엘/미가엘 등등의 족속이 있는 것이다.

천사장족속, 천군장족속, 소식을 전하는 사명자 족속 들이다.

이처럼 바벨탑은 인류의 행동이 하나님에게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본론으로 돌아와서!

인간은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행하는 존재인데,
이는 사랑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꿈꾸고, 동경하고, 실체를 이루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완성적 존재가 아니라, 과정적 존재로 창조된 까닭이다.

그래서 구약도 과정이고, 신약도 과정이다.

구약과 신약은 과정의 역사로서 사랑의 차원성을 터득해가는 역사였던 것이다.

종과 아들이란 개념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사람이 젓가락 하나를 발명해서 일상에서 누구나 사용하기까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엔 상류층만 사용하다가 나중엔 인간이면 누구나 젓가락 하나를 사용하는 것이 짐승과 다른 인간의 품격임을 깨우친 것이다.

경험적으로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으니!
질병도 쉬이 생기고 몸에 좋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종된 역사란 것이 고정관념상 굳어져 있었던 것이다.

윗사람에 대한 그것은 충성일 뿐이였다.
어떠한 대화로서 다가설수 있는 대상이 아니였던 것이다

그러한 인류의 문화적특성이 그대로 반영되어서 하나님도 그러한 입장으로 모시고, 섬겨왔던 것이다.

종이 할수 있는 것은 주인에게 상전에게 모시는 사람에게 정갈하게 음식을 차려서 대접하는 것이 종으로서 최고로 영광된 삶이였던 것이다.

그래서 아들된 예수께서 오시면서 예루살렘 성전의 노점상들을 뒤엎어 버리신 것이다.


마태복음 21장
1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13.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이제부터 너희는 기도하라!
그러시면서 주의 기도문을 가르쳐주셨다.

그 내용은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마음이 나아갈 방향을 가르치신 것이다.

구약역사의 한계를 뛰어넘게 만드신 이가 바로 주 예수그리스도였던 것이다.

기도라는 젓가락을 생각해내지 못한 인류에게 젓가락을 사용하라고 가르쳐주신 것이다.

기도로서 하늘과의 문이 열리게 된 것이다.

매일 수시로 하나님께 기도로서 나아갈수 있었다.
얼마나 실용적이고 편리한가?

단 기도의 문을 여는 열세는 예수의 이름이였다.

예수는 곧 아들된 생각세계다.

하나님은 그 아들이라는 생각의 통로에서 인류를 새로이 대해주셨다.

시대마다 한계를 뛰어넘는 그곳에 새로운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에 임재하고 계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