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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세계와 신령

인간은 왜 신을 만나고 싶어하는 것일까?

신이란 창조주이며, 인간에게 생명의 그 시작이 되시는 것이다.

자녀는 부모로서 태어나게 해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의 마음을 느끼고, 때가 되어 육신의 부모가 그 생을 다하고 떠날때즘엔 더욱 감사의 깊이를 더 깊이 깨닫게 되는 것이라!

우린 죽으면 영혼의 창조주에게 다가가고 믿던 믿지 아니하던 한번쯤은 맞닥뜨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의 이치가 다 그러하듯! 만사가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다.

우리 육신의 부모와 결별하면 영영한 이별이 찾아오듯이!

우리의 육신의 뇌가 다하는 순간 창조주와 영원한 이별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그 헤어짐의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해서 영혼은 살아생전에 그 사람의 뇌를 통하여 수없이 감동을 더하여주고, 깨닫게 해주기를 쉬지 않는다.

그래서 그 십자가상에서 생을 다하는 순간 예수께선 그 이별의 아픔을 아시고 더없는 안타까움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셨다.

육신의 때가 다하면 자연스레 영혼의 때를 맞이할 수 있을까?

영혼! 영혼이란 그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비조영인 천사들을 영혼의 존재라 부르지 않다.

영이라고 부른다.
영에겐 혼이 존재할까?

혼이란 무엇인가?

사람의 몸에 신(영)이 깃든 마음의 상태를 이르는 것이라!

즉, 인간의 육신인 뇌의 활동. 마음이란 상태를 통하여 영이 영혼의 작용을 하는 존재를 영혼이라 칭하는 것이다.

인간의 몸에 영혼이 생기는 것은 신이 깃들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고?

그처럼 안타까운 물음도 없다.

짐승의 몸에 신이 깃들수 있을까?

혼체! 혼의 작용이다. 혼이 활동하는 모양과 형상을 혼체라고 부른다.

물론 혼도 이미지로 보려면 눈코귀잎이 존재할 것이다.

우리가 세상의 학문인 물리학을 배우면서 깨달아가는 것은 작용에 대해 배우고 깨달아가는 것이다.

작용/ 반작용. 이것이 혼의 작용인 것이다.

그 사람은 혼의 작용이 있기에 혼체가 생성되고 유지되는 것이다.

체란 바디다. 몸이다. 헌데 의미상 작용을 뜻한다.

주관이 뚜렷한 사람은 혼체가 뚜렷할 것이다.

물론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느냐? / 극단으로 치우쳐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감사란!

하나님에 대한 감사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가는 만큼, 깨달아가는 만큼 그 감사의 차원이 달라진다.

신령할 수록 그 감사가 깊이가 있고, 더 다양한 주제로 매일 다가설수 있을 것이다.

자녀가 부모에 대한 감사는 평생을 다하여도 헤아릴수 없을 것이다.

이것을 하늘같이 높고 바다같이 깊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신령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지속적으로 포스팅을 하는 것은 알아가려는 노력의 과정이다.

배웠기에 감사하고, 감사하기에 더 배우려고 하는 것이다.

지식에 멈추면 감사가 없고, 감사가 떠오를땐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이 쌓여가는 것이다.

부모에 대해 알아가는 것에 천문학과 지리학이 필요할까?

부모에 대한 감사가 떠오르면 부모의 마음을 알아가고 배워가는 것이다.

그처럼!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떠오르면 하나님이 자신에게 행한 일들에 대해 감사하게 되고, 그 감사를 통하여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여! 감사와 신령함은 하나이다. 일체를 이루고 있다.

자녀는 사랑으로 낳아서 사랑으로 키웠기에 볼수록 기쁘고, 흐뭇하며, 만족감이 드는 것이다.

형제도 하나님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하나님의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런것이 하나님의 마음과 일체되어가는 과정이다.

예수께서는 분명 이러한 마음으로 따르는 자들을 대하여 주었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기까지 하신 것도 그 마음으로 행하신 것이라!

나는 하나님에 대하여 얼마나 배우고 깨닫고 있을까?

또 얼마나 배움에 열심을 내고 있을까?

내가 감사하고 있는 방향이 무엇이고?
그 차원성은 어떠한 것일까?

감사란! 다 다르다.

종의 감사가 다르고, 아들의 감사가 다르다.

예수께선 주기도문을 통하며 그 감사의 깊이를 함축적으로 깨우쳐주셨다.

그것은 바로 아들로서의 감사이다.

시대가 변화하였다. 이시대의 감사란 무엇인가?

하나님은 이 시대에 어떠한 차원의 감사를 기대하고 계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