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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느낌이다

다음에 두가지 어구를 예시해보면..

1. 한 번을 만나도 느낌이 중요해! ( 대중가 가사 )

2. 요한계시록 3장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느낌이 없는 사랑이 있을까?

느낌이 없는 신앙이 존재할 수 있을까?

너는 이 계명을 지켜라 이는 너와 나의 율례니라!

너는 아버지께 이렇게 기도하며 나아가라!

구약과 신약의 사랑기준이 이러하다.

헌데 구약은 정언명령이다. 해라. 하지마라!

신약은 좀 개선이 되어서 강요하진 않는다. 그래도 이랬으면 좋겠다며 넌지시 아우트라인을 정해놓았다.

신앙의 핵은 사랑이다.

사랑을 지키고 표현해가는 과정이다.

지키는 것에 중점을 둔 것이 구약이고,

표현도 중요하다고 개선된 것이 신약이다.

그렇다면 사랑의 표현 방식중에서 가장 강렬하고 뜨거운 사랑의 표현은 어느것일까?

바로 신부다.

첫날밤에 신랑을 맞이하는 그 사랑이다.

결혼해서 자녀를 낳아서 미운정/고운정 다 들어버린 그 사랑이 아닌!

그래서 신부에겐 이래라!/ 저래라! / 이랬으면 좋겠다.
굳이 강요하시진 않으신다.

하지만!

심정의 언어를 알아들어야 하며 그 전에 눈치 챌수 있어야 신부라 할수 있다.

심정의 언어란!

영어/라틴어/ 한국어도 아니다!

계시라면 계시일 수도 있겠으나!

영적인 말귀를 알아듣는 능력과 인식이다.

같은 대상을 바라보면서 같은 차원의 것을 생각할 정도가 되어야 신부라 할수 있다.

그래서 신부로서의 느낌이 있어야하고, 신부로서의 감각이 살아있어야 신부의 하늘사랑을 할수 있다.

왜? 아멘! 아멘! 하는 것일까?

바로 반응이다. 반응이 살아있어야 살아있는 것이고, 그것이 살아있는 신앙이다.

반응이 없다? 왜일까? 느낌이 없어서다.

남녀의 사랑도 반응이 없다면 그것이 사랑일까?

의무로 사랑을 하는 것?

신앙을 의무로 한다는 것은 사랑을 의무로 한다는 것과 같다.

부담을 느낀다는 것은 사랑으로부터 멀어졌다는 증표다.

느낌을 논한다는 것이 긍정/부정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차다/ 덥다도 정도의 차이고, 느낌의 차이다.

짜다/달다/시다/맵다 등등 모든 맛들은 느낌의 강도인 것이다.

그 느낌의 강도란 대상에 따라 달라짐은 물론이다.

그 느낌의 강도 또한 개성의 맛이기에!

그래서 신부란!

신부의 몰개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생명력이 없는 느낌이 없는 그것이다.

하나님 앞에 개성으로 나아갈수 있는 것은 바로 자아존재감이다.

자존감! 사랑의 자존감이다.

하나님께서 부자집 금수저라고 더 귀히 보실까?

그러하기에 자신의 개성으로 왕의 신부가 되는 권세를 얻는 것이다.

개성의 신앙이라!

너무 차원을 높여 이야기하면 대화가 안되는 것이기에!

종에서 자녀로 자녀에서 신부로 성경에선 논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하나님을 만날만한 때이고, 하나님과 대화하고 소통할 만한 때이다.

때를 아는 것이 지혜이고, 슬기이며, 신부로서 준비해야할 사랑의 기름이다.

구약의 느낌과 언어로, 신약의 느낌과 언어로?

사랑이라는 느낌의 언어를 깨달아 하나님앞에 나아갈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