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인식의 핵은 익숙함이다.
자주 접해보았거나, 이해가 되는 생각의 관념들이다.
그러한 인식관이란 학문도 예술도 신앙도 매한가지다.
이단아란 별칭이 왜 나오는 것일까?
그 익숙함의 범주를 넘어서 경계 저편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존재행위를 우리는 우리의 인식관으로 재단하고 평가한다.
개인이던 단체이던 어느 하나의 익숙함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경험과 이해의 사고폭이 요구되는 것이라!
너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베드로에게 예수께서 물어보았다.
주는 그리시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그러자! 예수께선 이를 깨닫게 해주신이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말씀하신다.
결국 베드로의 인식의 폭이란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을 담기엔 부족했던 것이다.
따르는 제자들도 예수님을 담기엔 부족한 인식이였을 진대!
유대인들과 그 시대 세상사람들의 인식은 논해 무엇하겠는가?
역사가 더디가는 주된 이유가 바로 이러한 인식관 때문이다.
시대성이란 시대의 인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구약은 구약의 인식이 존재하고, 신약은 신약의 인식이 존재한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도 인식의 차이에서 오며, 그 인식에 이르는 이해의 과정에서 서로 다투게 되는 것이다.
신앙의 세계도 바로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시대를 가르고, 종파를 가르는 것이다.
하여! 신앙이란 사상의 세계다. 어떠한 이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신약시대엔 바로 아들이란 이념을 가장 큰 가치로 내세운 것이다.
너희도 하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이다.
이말은 너희가 종에서 아들로 휴거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즉, 너희는 모두 이 말씀을 듣고서 나를 믿고 따르면 휴거될 것이다. 이런 맥락이다.
기독교에선 공중휴거를 논한다.
공중이란 어떠한 의미인가?
공중/우주/ 땅 무슨 차이가 있는가?
공중이란! 유형세계를 통칭한다고 볼수 있다.
무형의 세계가 아닌 유형의 지구땅 덩어리에서 휴거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구시대권의 역사인식에서 벗어나서 새시대 역사인식으로 홀연히 휴거된다는 뜻이다.
이젠 새시대의 역사인식이 요구되니!
바로 신부역사로 홀연히 휴거되는 것이다.
생각의 휴거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은 그 사람들의 행위를 이끌어가고 그 행위들 안에서 새시대 인식의 실체개념을 얻어가고, 이루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즉 시대사명자의 행실을 직접 보고, 듣고, 따라하는 과정이 필연적인 것이다.
아들을 보아야 따라할 수 있는 것이고, 신부된 자를 보아야 따라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인식은 휴거를 생각하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면?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인가?
카테고리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