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생각의 자유함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권세인가?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게 태어난다.
굳이 천부인권을 논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사람은 누구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남을 통해서 생명을 부여받게 되고, 보살핌속에서 사랑을 받으며 성장해간다.
이러한 삶은 인간이 동물과 다르게 누릴수 있는 평등이라는 권리이다.
헌데 사람이라 할지라도 모두다 평등의 권리를 부여받진 못했다.
그것을 우리는 야만이라고 부른다.
동물들이 누리며 살아가는 양육강식의 척박한 세상!
기독교의 신앙은 이러한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평등과 진리 그리고 그안에서 자유를 논하는 것이다.
그러한 것을 보았을진대!
예수께서 꿈꾸어왔던 그 진리의 세계가 중세봉건적 교리속에서 얼마나 감추어져 왔는지?
신분이란!
인간이 정한 것이고, 그 신분속에서 삶이란 억압과 속박일 뿐이다.
성경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과 법을 따라서 사는 것이 아닌!
왕을 세우고 그 가 세운 법을 따라 통치받기를 원하였다.
하나님이 뜻하신 진리와 자유의 세계란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사무엘상 8장
4.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5.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6.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기를 원치 아니하였다.
누군가를 속박하고 그 속박속에서 누군가의 자유를 옥죄는 제도를 바랐던 것이다.
사람의 생각들이 각기 다르다.
각각의 개성된 생각들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획일적이며 강력한 통치적 체계를 바랐던 것이다.
사무엘상 8장
9.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
10. 사무엘이 왕을 요구하는 백성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말하여
11.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12. 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13. 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14. 그가 또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15.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16. 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17. 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18. 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니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일대일로 만나시지 않겠다는 말씀이다.
너희는 너희가 세운 왕을 통해서 나에게 나아오라는 말씀이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회복역사는 또 한번 틀어지게 되는 것이다.
화목제로 예수께서 오실때가지 이스라엘의 고난과 역경이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근본 이유다.
왜 구약을 종들의 시대라고 이야기 하는지 그 진의를 파악할 수 있어야한다.
아들을 종이라고 밖에 부르지 못했던 하나님의 아픔을 이해하시고 그 치유됨의 역사를 예수께서 펴신 것이다.
깨달았기에! 아들이 되었고, 그 아들의 권세로서 신약 2천년 역사를 펴오신 뜻이다.
하여! 신약의 역사란!
깨어지고 상처받았던 구약의 역사를 회복하고 치유하는 역사인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께선 율법을 폐하러 온것이 아니라, 완전케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신 뜻이다.
아들일까? 아들일 수 있겠다. 아들인 것이 확실하다.
이러한 생각의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일까?
이런 생각이 신약역사의 토대가 되었던 것이다.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없었기에 이스라엘은 구약 종들의 역사로 끝나버린 것이다.
믿음이란 생각으로부터다.
생각이 없다면 믿음도 없는 것이다.
구약적 사고는 구약의 믿임을!
신약적 사고는 신약의 믿음을!
너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예수께선 말씀하시길!
내가 누군지 알았다면 그리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없이 기다리고, 생각없이 대하였기에!
새시대 역사는 항상 하나의 생각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새시대 역사가 시작되면 하나님께선 그 생각안에서 인류를 새롭게 대하신다.
신약때엔 자녀권 역사로서 아들됨의 역사를 펴신 것이고,
또 휴거와 재림의 역사를 통해서는 새로운 생각으로 대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신부의 개념인 것이다.
생각이 아가서에 나오는 사랑하는 자의 그러한 것으로 휴거되고 변화되지 못한다면 차원도 그안에 있는 것이다.
아가 6장 10.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
이것이 어찌 사람의 외모에 관한 것일까?
생각의 세계가 그와같다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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