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을 시작하는 계기는 다 다르겠으나, 신앙이란 본질을 생각하고 다가서는 과정은 하나의 길로 통한다
바로! 구원의 문제다.
사람들이 천국/지옥이 있거나 없거나를 몰라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님을!
구원자의 입장에선 이 부분을 심각하게 생각할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가 있는 것이고, 신부가 성당에서 사역하는 이유다.
다른 여타 성직자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구원이란 부분에 대해서 논하고 인식시키는 과정들이 디테일하게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역의 주체들이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것이다.
헌데, 그러한 사역자들이 구원이란 개념의 정리를 확실하게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드는 점도 있다.
유대 제사장들의 가장 큰 직무유기는 바로 구원역사에 대한 빈약한 개념정립과 구원역사의 핵이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에 대하여 노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예수께서 이런 답답한 행태를 보시고 한말씀 지적하셨다.
마태복음 6장
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이떻게 하면 천국에 갈수 있나요?
그리고 지옥을 면하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요?
이러한 질문을 유대제사장에게 던졌다면 그들은 어떻게 답하였을까?
명쾌하게 답을 주고 명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연령때는 십대 때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고 철이들고, 나름 인식의 자기세계를 구축해 가다보면 교리의 일반상식과는 다른 길들을 찾아내게 된다.
이 과정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일탈이라고 인식하지 못할때도 많다.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아라! 이것은 구약의 가장 기본되는 십계명중의 하나이다.
최근에 간통죄의 폐지를 두고서 말들이 많았다
시대의 통념과 법관의 상식이 그 수준임을!
헌데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레 사람들끼리 친해지고, 그러다보면 남녀가 친해지기도 하고 그 선을 넘는 순간 불륜도 싹트게 된다.
헌데 이 부분에서 신앙의 법이 잣대를 들이대게 된다
사람은 자기가 익숙한대로 살아가려고 한다. 자기인식속에 살아가는 것이다.
신앙의 법과 자기인식의 충돌속에서 사람은 전후를 놓고서 저울질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구원에 대한 인식이다
하나님이 계시고, 천국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자신의 마음을 컨트롤 할수 있는 신념이 필요한 것이다.
구원의 세계는 신앙에 있어서 자기 확신이란 신념을 토대로 이루어가게 된다.
진리도 말씀도 자기의 신념을 이룰수 있어야 하기에 깨달음이 너무 중요하다.
겪고 나서 깨닫기도 겪은 후에 깨닫기도 하는 것이다.
구원을 무엇으로 바라보는지에 따라서 각각이 지니게되는 신념의 모양과 형상이 다르게 형성되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신념은 구원을 이룬후 드러나게될 자기 영의 모양과 형상을 가늠하게 해준다.
자신이 천국의 어느 차원에서 어떠한 형상과 모양으로 존재하게 될지를 깨달을수 있는 지표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가 생겼을때 태에서부터 아빠와 엄마의 어느 부분을 닮은 아이가 태어날 거라고 예측해보기도 하는데..
자신의 영은 자기의 신념이란 씨앗과 생각이라는 영양분을 토대로 성장해가는 것이다.
그리고 말씀이라는 관리의 과정을 통해서 완성체로 존재해가는 것이다.
구원의 시작을 어디에서 시작할것인가?
삶에서? 말씀에서? 자신의 신념에서?
구원이라는 추상의 관념을 삶속에서 구체화 시켜가는 과정에 말씀이 필요하고, 그에대한 깨달음이 요구된다.
그 깨달음에 다가설수록 자신의 구원이 모양과 형상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카테고리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