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가 개벽하는 역사를 사람들은 좋아한다.
땅에서는 너무도 내다보이는 그런 삶들의 연속이기에!
하늘에 대한 소망을 품어보는 것이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여 내려져오고 있는 것이다.
변화의 역사는 인간이 땅에서 이루기엔 너무 어렵기에!
하늘에서 비가 내리듯이!
하늘에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강한 기대감의 기록들이 여러 종파와 도파 그리고 민속신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퍼져 내려온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보편적 믿음과 기대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은밀하게 심어져 온것이다.
그러하기에!
유대인들도 하늘에서 하나님이 강림하사 불쌍한 유대민족을 강력하게 이끌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징조로서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엘리야가 먼저 이 땅에 내려와서 예비하는 역사를 펼것이라는 것이 유대인들의 마음속엔 깊숙히 자리잡고 있었다.
헌데, 천지가 개벽하는 역사는 일어나지 아니하고, 세례요한이란 자가 일어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이렇게 막 외치고 다녔다.
이에 유대인들은 제사장들까지도! 무언가 하늘에서 변화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을 한껏 높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이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음을 기록한 성경구절이 있다.
마태복음 17장
10.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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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13.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유대인들은 엘리야가 왔지만!
엘리야를 알아보지 못했다. 인식의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엘리야를 알아보지 못하였기에 그러한 그들의 인식으론 그리스도 또한 알아 볼 수 없었다.
천지가 개벽한다고 어느 도파에서 주장하는 그러한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개벽이란 무엇인가?
바로 사람들의 인식을 뜻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는 것이 바로 천지가 개벽하는 것이다.
종과 양반이 한 식탁에서 겸상을 하고, 같이 사우나를 즐기고!
빈천구분없이 남녀가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추구해가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개벽이다.
유대인들 또한 천지개벽하는 역사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헌데 그들의 인식관으론 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기에!
종의 인식으론 아들이 과연 어떠한 천지개벽의 생각인지 알아볼수 없었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이어지는 천지개벽의 휴거역사는 그렇게 홀대를 받았고, 무관심속에 잊혀져가는 듯 하였던 것이다.
십자가의 도를 아는가?
그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가장 모욕시하는 죄를 범한 참람한 자인 것이다.
그냥 죽이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을 박아서 핏물이 다할때까지 극심한 고통을 주어 죽이는 형벌에 처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한다며 그러한 일을 행한 것이다.
그들의 그릇된 인식은 그리스도의 육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영혼까지도 십자가에 못을 박아버린 것이다.
시대의 사명자들은 모두다 이러한 인식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다.
예수? 세리와 죄인들 그리고 창기와 어울리는 자!
이것이 그들의 인식인 것이고, 주옥같은 그리스도의 설교말씀들은 어느 한 구절도 그들의 마음에 씨앗으로 심어지지 못했다.
이시대에 신부라는 개념을 주장하는 곳이 더러 있더라!
하지만! 신부의 참된 개념을 인식하고 있는가?
신부라는 차원적 언어를 온전히 해석하고 있는가?
수동식 역사 구약과 반자동식 역사 신약인 것이다.
신부란 신랑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깊은 곳 까지도 교감할수 있는 일체적 차원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신부라고 쓰는 이유는 비유이기 때문이다.
다른 언어 표현으로는 비유할 수 있는 적당한 언어가 없다.
새로운 역사가 온다고 할지라도 인식관이 흔들리는 천지개벽의 역사인 것이다.
유대인의 차원에서 예수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버릴수 있어야했다.
유대신앙의 근본인 종의 인식을 버려야하는데 이는 그들에겐 목숨을 버리는 일처럼 힘들고, 천지가 개벽하는 일인 것이다.
왜 이러한 일들이 강건너 불구경이라고만 생각을 하는가?
나에게 다가온 현실은 아닐거라고 굳게 확신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직도 하늘에서 번개가 치고 하늘의 문이 열리며 승천하신 예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세상의 학문을 배우고 철학을 깨우치고, 신앙을 해나가는 모든 것이 결국 인식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임을!
내 인식안에서 하나님도 예수그리스도도 호흡하시는 것이다.
내가 유대인의 인식이면 하나님도 그러하시고,
내가 기독교인이면 하나님 또한 그러하시다.
왜? 유대인만 4천년의 고통을 받고, 느꼈을 거라 생각하는가?
하나님 또한 구약 4천년의 역사속에서 고통을 느끼신 것이라!
그러한 인식의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한 아들의 인식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인 것이다.
내 생각의 차원이 아들에서만 머물러 있으면, 그 차원에서 영광인 것이다.
열처녀의 비유를 드신 뜻은 신랑으로서 하나님께서 받아야 할 영광이 무엇인지를 깨우쳐주신 것이다.
시대가 새로워지면 하나님 또한 새로운 차원에서 영광을 받고 싶으신 것이다.
지금까지는 인간의 관점에서 휴거를 논해왔지만!
이젠 하나님의 입장에서 어떠한 휴거를 기대하시는 지를 깨달아가야 신부급 휴거의 차원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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