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햇그늘이 어느덧 저물기 시작하면 지나온 세월을 반추하며 그 수많은 사연들을 기억해본다
나를 객관화시키고 인정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애씀과 노력들이 필요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나로 인하여 아파하고 힘들어 했을지를!
나라는 한 사람이 스스로를 인정하기까지 가까이는 부모와 형제, 친구 그리고 관심과 애정으로 대해준 지인들까지도..
인생의 길이란!
자유의지속에서 계단을 밟아 올라가듯
생각의 조각들을 퍼즐맞추듯
그리고 한편의 수묵화를 그리듯이 적절하게 삶속 여백을 줄수 있는 능력을 얻기까지
그안에서 나는 존재해왔고,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능자의 존재행위란!
나는 여호와니라! 이렇게 말 한마디면 모든 것들이 해결되어 왔을까?
전전반측!
역사의 기나긴 밤을 지새우며, 홀로 고독한 삶의 의미를 부여하기까지!
존재로서의 고독이 그 누군가와 공명하여 생각의 파장을 일으키게 되었을때!
전능자는 각성하여 비로소 그 존재의미를 떠올리나니!
누가 있어서 그 이름을 부르고 그 이름을 들었을때 그는 자신의 사명을 생각하고 행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의 주인이란, 역사의 주인이 되는 것이란!
신으로서 인간처럼 행하고 인간으로서 신처럼 생각하는 존재행위들이다.
신약의 주인이 누구였을까?
그를 나사렛 예수라 불렀었고, 그 사명의 행위는 그리스도였다.
인간으로서 신처럼 생각하여 전능자가 인간처럼 이땅에 행하시도록 역사를 펴왔던 것이다.
그리할때 하나님께선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하신 것이다.
마태복음 3장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아담과 하와는 신과 인간의 경계를 만들고 단절시킨 장본인들이지만!
예수그리스도는 단절된 인간과 신의 관계성을 회복시킨 화목제인 것이다.
구약은 주인과 종처럼 하나될 수 없는 종들의 역사였던 것이나!
신약은 부모와 자녀처럼 하나되어지는 관계성의 회복역사이다.
하여!
그 깊은 차원의 관계성을 향한 신약의 예언이 있었나니!
바로 그것은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러 예비하는 하늘의 역사인 것이다.
존재행위가 아들인 고로 아들역사인 것이고,
존재행위가 신부이면 신부역사인 것이다.
종은 종으로서의 고뇌가
아들은 아들로서의 고뇌가 있는 것이다.
신부로서 고뇌하고 차원성을 더하기 위해 애쓰는 그러한 삶들!
과거의 역사는 무엇을 이루려하였고, 무엇을 이루어 왔을까?
그 역사의 전환기엔 어떠한 차원으로 생각들이 변화해가는 것일까?
주도면밀!
분석하고, 연구하여 하나의 생각에 이르기까지!
그 차원속에서 행하시고, 존재하시는 여호와 모양과 형상을 그려내는 것이 새역사의 차원역사가 되는 것이다.
한 생각이 바뀌어야 새로운 차원역사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하니!
저 머나먼 안드로메다 건너에 하나님과 천국이 존재한다는 믿음은 너무 추상적이다.
오히려! 개성된 생각인 아공간에서 전능자와 만나게 되고 존재로서 서로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검증된 타인의 삶이 아닌!
바로 자신의 삶에서 여호와를 만나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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