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마라톤을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체력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마라토너들이 체력이 좋아서 근지구력이 좋아서 마라톤을 잘 한다라고 표현할수 있다.
하지만!
일반인이 하프마라톤을 뛴다는 것은 자기 한계와 의지의 문제다.
필자도 매일 10키로 씩을 뛰어보다가 어느날엔 하프마라톤을 해보자 싶어서..
긴 시간을 걸려서 하프마라톤을 해보았다.
물론 상당한 시간이 걸렸음은 물어볼 것도 없다
하지만!
신기한 점은 내 몸의 통증이 몰려왔지만!
나는 내가 뛰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멈추지 못해서 계속 뛰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반복된 한계이상의 움직임은 사람에게 하나의 암시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의지의 영역이다.
다른예로서!
영겁의 세월을 지나온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는 인류역사의 시작에 나왔고, 시대마다의 관습과 문화를 답습하면서 그 시대에 맞게 변화되며 겪어왔다.
그리고 마침내 어떤 차원에서 하나의 의지를 지니게 되었다.
내가 선한 존재가 되었노라고!
수많은 기억들을 일일이 나열할 수도 없는 것이고, 하나의 의지로 귀결되는 존재가 되었다는 각성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인간이 전능자의 마인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영원한 시간과 물질의 세계 넘어에서 존재해가는 그러한 삶!
그렇다면 [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한 답을 얻을수 있을 터이다.
그 답을 얻었다면 나는 누구이어야만 하고, 무엇으로서 존재해가야 하는지를 추구해가는 것이다.
이것을 선하다고 하며, 선의지라 칭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깨달은 예수께선 어찌하여 나에게 선한 것을 묻는냐?
말씀하신 뜻이다.
마태복음 19장
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선한 일은 선한이에게 물어라!
그리고 선한이가 하신 말씀, 즉 계명을 지켜라!
이러한 맥락이다.
예수께서 사명자가 되신 것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심정세계를 늘상 생각하고 묵상하면서 깨우치며 성장해 오셨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2장
42.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43.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49.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50.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누군가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은 마인드, 생각의 세계를 깨우쳐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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