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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등불

사람은 마음이 꺽이면 행실이 위축되고,
행실이 꺽이면 생각도 방향성을 상실하게 된다.

사람의 실존이란 무엇일까?

생각지향성이 무디어 지면 인간의 실존세계도 저물어가게 되는 이치다.

마음! 바로 마음의 존재가 인간적 본질이다.

신은 인간의 마음을 창조하여 생각, 즉 신에 이르게 창조하셨다.

예수께서 산상설교를 통해서 마음의 이치에 대하여 깊이 있게 설교하신 이유다.

메시아가 기도로서만 세상의 이치를 깨우쳤을 것이란 황당한 생각이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그것을 소위 믿음이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까?

신약의 세계는 이러한 황당한 믿음을 강요한 적이 없었다.

신약성경의 기록들을 보면 제자들의 세상경험과 배움이 일천하여 오직 마음에 느껴지는 이야기만 기록한 까닭일 것이다.

하지만! 바울의 기록은 어떠한가?
세상적 학문들과 철학 그리고 유대신앙의 기본을 가지고 접근했기에 그 마음과 생각의 세계들이 기독교 복음화에 위대한 족적을 남기고 있지 아니한가?

영으로 나타나신 예수께서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네가 나를 십자가에 못박았지만!
나는 부활했고, 신적능력으로 네 허물을 깨우치리라!

이렇게까지 원수까지 사랑하시고, 그 원수를 통해 복음을 펴셨으니!
이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제자들의 역할이란!
가교역할 그 사명인 것이다.

사도바울의 등장이란!
아마도 베드로가 아닌 사도바울이 예정된 인물이 아니었을까?

결과론적으로 예수님 사후에 어마어마한 복음의 사역을 폈기에!

세례요한이 저렇게 허무하게 죽은것도 본 뜻은 아니었던 것이기에!

그리보면 새 역사가 오고 펼쳐진다 할지라도!

그 당대에 실력있고, 명망있는 시대 사명자들이 시대의 주를 알아보고, 인정하고, 따를수 있을까?

또 시대의 주를 따라가고 인정하고 배운다 할지라도!

2천년 기독교 역사를 답습하고 체계화되어서 온 인물들의 기본적 학식과 소양, 사상적 체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

역사는 동시성이라 할 것이다.

바람처럼 왔다가 스쳐지나가는 사명자를 알아보고 증거할수 있다는 것도 엄청난 행운이거나 기연이 아니고선 어려울 것이다.

예수님께 십자가상에서 구원을 받은 우편강도나 예수님을 대신해서 강제로 십자가를 등에 지고 걸었던 시몬과 같은 천운이 아니고선 ...

길어졌다.

믿음이라하는 신앙의 본질이란 실존세계의 매카니즘 속에서 이루어지고 얻어지는 것이다.

내가 실천함으로 내가 생각함으로 그리고 내 마음이 다시 느낌으로서 실존세계는 완성되어 가는 이치다

신앙세계도 내가 실천함으로, 느낌으로 그 생각과 사상이 완성되가는 것이기에!

내가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는가?

[ 그날 밤에 밝은 등불 들고 나갈 준비가 되어있느냐]로 찬양하며 따라왔던 기독교 역사의 끝이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