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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록과 열정

사람은 경험치가 쌓이면서 기존에 지나온 과정들을 되새기는 여유를 가지게 된다.

자신이 옳다고 느끼고 판단해서 내린 결정들이 내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전통!
전통이란 지나온 유구한 세월들의 나이테와 같다
누가 보아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고 나무가 자라온 환경들이 어떠했는지를 알수 있다.

사람도 그렇고 사람이 속한 단체들도 그러하거니와!

유대인들의 전통이란 바로 그러한 세월속에서 체질화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한 체질들이 뛰어난 선지자들의 몇마디 외침과 또 시대 메시아의 혁명적인 말씀에도 붕괴되지 아니하고 그저 스쳐가는 바람에 지나지 않았다.

사고!
사고란 한순간의 판단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왠지 그 느낌대로 했는데 결과적으로 좋지못한 일이 일어나고 그에대한 후회로서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결심도 하는 것이다.

사실 예수님과 유대인들의 역학관계란 이러한 연장선에서 바라보면 이해가 쉬운 부분들이 있다

당연한 귀결이고 당연한 과정이였던 것이다.
예수께서 행하신 사역이란 너무도 무리한 스케줄속에서 이루어진 강행군이었기에!

아마도 고난의 주와 영광의 주를 예언한 이사야서 기록처럼!

하나님께선 그 양면성의 역사를 예견하셨을 터이다.

그래서 화목제로 보내신 뜻일 것이다.

어떤 변화를 주기 위해선 사람들이 겪어가야할 과정들이 필요한 것이고!

그러한 과정들은 한계진동수를 넘어서야 변화를 줄수 있기 때문에 강력한 생각의 에너지를 동반하지 않고서는 이루어 갈 수 없는 것이다.

변화란 한 뿌리에서 나와서 다르게 갖추어가는 과정을 변화란 한다.

변이란 달라지는 것이고
화란 형태를 갖추는 것이다.

즉, 달라져서 어떠한 형상을 이루어가는 것이 변화인 것이다.

하나님께선 당연히 관록을 갖춘 뿌리에서 역사를 펴시려고 다윗의 족속에서 한 가지가 나도록 하신 것이다.

그리고 에너지, 생각의 에너지를 품은 열정의 소유자를 내신 것이다.

당연 예수께선 그러한 생각의 열정을 품으셨던 것이다.

하나님을 마음, 뜻, 목숨다해 사랑하라는 말씀을 아무나 할수 있는 것인가?

종! 종의 권세아래에 자족하며 살아가는 그들에게 무슨 새로운 생각이 있을 것이며,
그러한 생각아래 어떠한 열정이 일수 있을까?

하나님은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인 것이다.

생각이 살아있을 때 삶은 열정으로 차있게 되며, 그 열정은 기존의 관록속으로 녹아들어서 체계적 변화를 얻어가는 것이다.

율법이란 관록이고, 예수의 말씀은 생각이라는 열정이다.

그 열정의 핵은 아들인 것이다.

아들이란 신인류가 기독교 역사에서 태동한 것이다.

하늘의 천사들은 인간의 영혼이 사후에 들면 그 영혼이 종이라는 족속인지?
아들이라는 족속인지를 사명적 관계로 파악하고 분별하는 것이다.

생각의 세계를 품고 있는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헌데 이제는 변수가 하나더 생기게 되는 것이다.

하여 새로운 역사란 항상 기존성의 역사를 파괴하는 것이 아닌 새롭게 재창조해 가는 역사인 것이다.

관록에만 치중하면 외식과 형식일 뿐이고 변화의 생각을 품으면 새로운 차원의 문을 열수 있고, 그 안에서 새 하늘과 땅, 인식의 세계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인식이 없는 삶이란 그저 무미한 삶일 뿐이다.

그렇기에 내 자신을 더 살피지도 않고, 나의 인식을 초월하는 하나님도 찾지않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예수께선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 돌아서게 하시려는 역사를 시작하셨다.

세리면 어떻고, 죄인이면 어떠한가?

길 잃은 어린양 한마리를 찾아나서는 목자로서 인류에게 오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