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리니!
성경구절은 묵시적이고 고도의 문학적 기교가 사용되었다.
예언을 하는 것이다.
생각의 세계를 인간언어로 표현하신 것이다.
예언이란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인간언어로 통역한 것이다.
이미지가 있다. 하나의 그림/ 심상을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신학의 전부일 수도 있다.
사명자가 있을 때엔 신학이 발전할 필요성이 없다.
사사던지! 선지자나 메시야가 있다면 바로 동시통역을 해주니까!
신학이란 그러한 과정이다. 하나님의 뜻과 생각에 다가서려는 의지의 산물이다.
하나님도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날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평균적 보편적 인간 DNA의 유전과정을 내다보시고 그렇게 표현하신 것이다.
한 싹이 난다는 것은 어떠한 결실이 나올지를 하나님도 기대하신 다는 뜻이다.
이미 확정적으로 결정해놓으신 것이 아니라!
구약의 시대가 끝나갈 쯤에 한 사명자를 보내겠다는 의미다.
이스라엘민족과 세계의 상황을 봐가면서 그에 맞게 한 사람을 키우고 연단시켜 보내겠다는 뜻이다.
절대예정과는 좀 다른 결로 바라볼수 있는 대목이다.
이 의미를 유대제사장들이 제대로 파악을 했다면 십자가 결말도 바뀌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란 기대섭리다 그것이 본질이다
인간책임분담은 하나님께서 가장 주의깊게 살피시는 부분이다.
그러한 하나님의 기대섭리는 사랑이라는 범주로서 깊고 차원성있게 개성별로 역사를 펴오셨다.
중심권섭리와 방개섭리를 아우르신 뜻이다.
구약을 보면 하나님께선 이방의 민족이라도 들어서 쓰셨다.
이 시대도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날 것이고!
그러한 줄기가 어떤 의미일지는 알아서 각자가 판단하며 살펴야 할 것이다.
단, 생각의 차원이 항상 걸림돌이다.
인간의 뇌가 물질세계에서 만유인력의 법칙에 강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중력의 법칙, 관성의 법칙!
예수께서도 아들이라는 생각을 받으셨을 때 과연 내가 모세처럼! 담대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안해보셨을까?
시대의 수준을 알고 유대인의 그 회칠한 무덤같은 뇌구조와 마음을 아실진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선 강권적인 하나님의 역사에 기꺼이 동참하셨다.
예수께서 얻으신 것은 세리와 죄인과 어울리는 자이고, 간음한 여인마저도 감싸주니!
예수님의 사랑이란 세계를 이해할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그러한 현실인식 속에서도 이새의 한 줄기가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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