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만물도 음과 양이 작용하여 에너지와 형태를 갖추어 가듯이!
모든 작용엔 음과 양이 존재한다.
이를 도인들은 태극이 세상 만물의 이치라 설파한다.
하늘과 땅
이 두가지 대 원칙에 의해서 지구는 창조되었고, 그 안에 있는 동물과 인간도 그 이치를 따르고 있다.
천.지.인 삼재지도 란 무엇인라?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이 끼어든 것이다.
인간이란 참으로 오묘하다.
인간이 있어서 하늘이라 부르고 땅이라 칭하는 것이다.
성경의 창세기에도 흑암이 깊음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위에 운행하시니라!
이 대목에서 하나님께선 복선을 주신다.
인간이 필요함을 우주 만물들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계획하신 것이다.
무언가 부족함 일까?
무언가 아쉬움 일까?
무언가 허전함 일까?
아마도 고독일 수도!
영겁의 시간과 시간의 겹침속에서 어떤 하나의 우연을 기대하고 기대했지만!
그저 공허하게 메아리쳐 돌아오는 신의 독백이었다.
어느날엔가 아주 피곤한 인생의 어느날에!
사는 것이!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를 느끼지 못할 만큼 피곤한 날에!
무릎을 꿇고 기도의 자세와 마음을 취한채로 스르르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들려오는 한 마디의 독백!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였는지에 대한 생각이 짙은 회한인듯!
한숨인듯! 안타까움인듯!
그 독백을 듣고 보니!
문득 나도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짙은 의문이 순간 들었다.
사람이란 도에 든다. 깨달음에 든다. 관조에 든다
각성에 이른다. 등등!
결국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 정체성과 존재의식을 새워가는 것이다.
모든 존재들은 내가 누군지에 대한 의식이 있어야 존속할 수 있다.
가정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녀가 삼위일체를 이룬다.
남편인데 아내가 없고,
아내인데 남편이 없다.
그리고 부모인데 자녀가 없는 것이다.
있어야 할 것이 없는 상태.
흑암이 깊음위에 있는 존재의식의 상태다.
실존주의 철학이란 인간소외의 고독감속에서 탄생되었다고 한다.
실존주의 철학의 깊은 핵은 상대성인식의 세계라 본다.
상대에게 나는 어떠한 의미이고, 존재인지에 대한 의문과 물음이다.
의문을 지니고 묻는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답을 도출해 가는 것이다.
깊은 의미의 사랑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1천년을 횡단하여 어느 차원에 이르게 할 이시대 말세의 상황속에서 사랑의 의미란 무엇일까?
신약의 예수께서 아들 사랑을 말씀하시면서 그 권세와 사랑의 세계를 말씀하셨다.
어떠한 사랑의 정점에서 전능자와 만나서 그 이름을 부르며 나아갈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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