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정해진 답이 있다는 생각 고전역학

양자, 퀀텀!!

양자화 되어있다는 표현방식이 무엇을 뜻하는가?

오늘은 필자가 또 무슨 괴상한 도입을 하려고 저러는 것일까? 생각도 하실것이라!

아인슈타인까지의 고전역학이란!

우리 인식의 한계선을 지구라는 시공간까지만을  한정시켰다.

사람이 우주를 향하여서 대기권을 탈출하고 여러가지 과학적  데이터들을 직.간접적으로 얻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수학적으로만 유추했던 사실들이 우주라는 시공간을 통해서 적잖게 증명되기도 하였다

고전역학이라는 인식은 존재론적인 철학사조와  한몸으로 유지되어 왔던 것이다

헌데 양자역학을 통하여서 어떠한 영역에선 특정할수 없게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불확실성이라는! .. 양자역학의 핵심논리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필요조건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지는 이 상황속에서

우린 고전역학적인 확고함과 신뢰의 틀을 깨고 나와야하는 도전과제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양자화란!
여러 측면에서 학문적 접근과 용어 사용들이 있겠으나!

한계에너지로 구성된 차원이라 볼수 있다.

아날로그의 세계는 엿가락 늘어지듯이 쭈욱 늘어나면서 그 과정을 살필수가 있다면...

양자의 세계는 그 한계 에너지로 도약해보지 않고서는 상위단계의 존재 유무를 알수가 없다

생각위의 생각 / 구름위의 구름/천외천!

구약을 알기 위해선  신약이라는 구름층에서 내려다보아야 보인다

신약도 제대로 알기위해선 한차원 위에서 내려다보아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양자화 되어있다.

생각의 차원성을 논하는 것이다.

젓가락을 쓰는 시대와 그렇지 못했던 시대의 시간차가 수천년 씩이나 된다.

성경적으로 보더라도 구약과 신약의 역사간 갭이 왜 그리도 길었을까?

깊은 것을 말하여도 영의 말귀가 트여야 이해도 되고 알아들을 수 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영적인 말씀이고 유대인들의 율법은 육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딱! 한마디!

예수께선  딱 한마디로 정의 내리셨다.
외식과 형식이다.

율법을 완전케 하러 왔다.  이 말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올때 완전케 되는 것이지!

따로 놀았으니! 결국 외식과 형식의 신앙으로 끝나버린 것이다.

신약의 말씀도 2천년을 지나왔다.

휴거의 말씀이란 영적차원성을 논하는 말씀이다.

예수께선 열처녀의 비유를 살짝 내비쳐보았다.

아들이란 개념도 힘든데..
혼인잔치의 개념을 논하니까 제자들이 어리둥절 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서 알수 있듯이!

아담이 아들급 역사가 무엇인지에 대한 언급없이 타락으로 끝나버렸기에!

구약과 신약의 역사가 단절되었던 것이다.

아담이 제대로된 사명길을 갔어더라면 유대인들에게 나름의 진전이 이어져서 다가올 아들역사에 대한 단초를 제공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아담이 행하지 못함으로 그 연결고리가 끊어진채로 구약의 4천년 좌충우돌 역사가 내려온 것이다.

예수님도 3년반이란 시간이 너무 짧았기에!

다시 오신다는 말씀만 하신 것이지!
다시 오실때에 어떤 차원의 역사일지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못하신채 떠나신 것이다.

예수님이 다시오신다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

어떠한 조건하에서 그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일까?

고전역학의 인식에서 생각하고 살피고 있기에 저 우주라는 양자의 세계를 가늠해볼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이 어떻게 다시오실까?
설마 육신부활을 믿는 사람도 있을까?

양자의 세계 , 그리고 양자화된 생각의 세계!
자신이 믿고 있는 고전역학적 강한 신념들!

이들 사이에 어떠한 역학관계가 이루어져야 이 난국을 타개해 나갈수 있을지?

신의 한수!
틀림없이 전능자 유일신 하나님께선 무언가를 예비하셨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