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삶을 통해서 배워가고 얻어가는 것들이 있음을 느끼어간다.
그러하듯이!
남녀간의 사랑도 그러하다.
단지 명확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이 느끼기에 희노애락애오욕 이라는 감정들을 누리고 이해하면서 그러한 세계들을 쌓아가는 과정속에서 삶을 누리는 것이다.
이것을 실존하다고 표현한다.
단지 눈앞에 보이는 것이라면 굳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강조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무엇으로 표현할까?
구약식의 사랑이란 전능자인 하나님께 인간이 감히 나아갈수 없기에 그저 모시고 섬기는 대상으로서 다가설 뿐이었다.
사랑이란 단어가 존재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예수님때에 와서 사랑!
바로 사랑이란 단어를 강조하셨다.
하나님을 마음. 뜻. 목숨다해서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도 그렇게 사랑하라!
헌데 예수님의 사랑은 너무도 현실적이고 마음에 느껴져 오는 실체적인 사랑이였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까지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시켜 주셨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주제로 설교한다.
그러면서 구약의 유명한 선지자나 사사들을 들어서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했던 그 기준들을 설교하는 것이다.
모심과 섬김이 다였던 구약의 성경시대 그 시대의 사랑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들의 실천은 위대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들의 차원은 과연 어떠하였을까?
그래서 제아무리 뛰어난 구약의 성경적 인물들이라 할지라도
신약의 성경인물들에 비하면 모세나 다윗 솔로몬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사랑이란!
마치! 전기등불앞에 반딧불정도의 밝기일 뿐이다.
우린 현 시대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모시고 섬길것인가에 대한 의문보다는
내가 내 삶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1:1로 사랑할수 있을지에 대한 과정에 더욱 탐닉할 때이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기 위해서 골머리를 쓰듯이!
여자가 남자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서 노력하듯이!
이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가져야할 최고의 덕목인 것이다.
아무리 집이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명예가 있어서 사람들이 칭송하고 따를지라도!
사랑에 실패한 사람처럼 불쌍하고 서글픈 인생이 없다.
예수님도 사랑하나 얻기위해서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셨다.
인생 최고의 목적은 사랑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이유도 사랑이고!
인간이 신을 알아가는 목적 또한 사랑이다.
인생의 길은 사랑의 길이다.
남녀가 만나서 사랑을 하고 자녀를 얻으면 자녀를 사랑하고! 손주를 얻으면 손주도 사랑하고!
그러다가 다 이루어보고 살았을지라도 마지막엔 신에 대한 사랑이 채워지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공허함으로 남게 된다.
그것이 철이든 사람들은 조금 일찍!
철이 늦게 드는 사람은 사망선고 몇달 몇일을 두고서 철이 들게 되는데...
내가 가진 그리고 내가 지닌 모든 것들은 사랑의 재료일 뿐이다.
신과 인간의 1:1 사랑 그 깊이와 차원성을 무엇으로 논할수 있을까?
나 한사람 하나님과의 사랑을 논할지라도 셰익스피어의 소설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신은 인간이 태어나 죽음에 이르러서 영으로 부활할 때까지 그 수많은 사건과 사고속에서 사랑을 이루어 가시는 것이다.
내가 느꼈던 그 감정들이 어찌 나 한사람만이 느꼈던 기억의 편린일 것인가?
그렇지 아니하다.
하나님은 인간 개개인을 고아처럼 내버려두지 아니하셨다.
사랑의 방식은 다 다르겠지만!
남녀의 사랑은 모두 다 극적이고 애타고 안쓰럽기까지 하다.
사랑의 주체나 상대체나 모두 다 같이 느끼고 공감하는 것이다.
사랑은 항상 그렇듯이!
일방일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사랑의 세계이며, 그 이치아래에서 전능자 하나님도 예외일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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