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생각하라!
남녀의 사랑은 생각의 사랑이다.
머리에서 잊혀지면 사랑도 잊혀진다.
눈에서 멀어지면 생각에서 멀어지고, 그러면 사랑도 식는다.
고무신 / 군화 거꾸로 신는다는 말이 있듯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리인듯하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늘 자신을 생각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목에 걸고 다니듯하라고 모세에게도 십계명을 석판에 새겨주셨다.
말씀을 잊으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헌데 성경만 줄곧 읽는다고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비유를 들자면!
남편과 아내가 같은 집 같은 침실을 쓴다고 그 사랑이 영구불변하게 가는가?
바람도 피고 이혼도 하고 그렇다.
무엇이 문제인가?
생각의 교감이 있어야한다.
같은 곳/ 같은 차원으로 소통해야 생각이 흐르고 전류가 흐르듯이 사랑의 에너지가 넘치게 된다.
교회를 다녀도 성경을 읽어도 그렇다.
이러한 율법아래에서의 유대인들의 신앙을 예수께선 회칠한 무덤같다고 심판하셨다.
하여서 이 시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바로 차원성의 사랑으로 가야만 통할수 있는 것이다.
사랑이란 시대 상식과 문화 그리고 과학적 사실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태양아 멈추어라고 기도했던 그 과학지식으론 천동설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던 것이고!
갈릴레오 코페르니쿠스와 같은 시대과학적 지식위에서 새로운 차원의 신앙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시대에 천동설을 믿는 그런 과학지식위에서 하나님과 소통하고 사랑하려 한다면..?
아마도 한 장면이 떠오를 것이다.
젠틀하게 신사복을 입은 남성에게 시골 작업복을 입은 아가씨가 고무신을 신고서 데이트를 청하는 ...
시대성이란 차원성이란 그리고 그러한 기반지식과 상식위의 사랑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은 철학을 그리고 과학을 배척하시는 존재자가 아니라 오히려 더욱 장려하시고 권장하신다.
빨리 부지런히 성장하여서 그 생각과 사고가 나의 차원에 이르도록 하여라!
외식과 형식이란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 눈감게 하기때문에 예수께선 그리도 싫어하신 것이리라!
무엇보다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키는 사명을 추구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이 이러할 것이다.
눈먼 소경이 그러한 신앙인들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서 더욱 멀어지게 하였다.
지금의 기독교 사역자들은 어떠한가?
왜 젊은 사람들이 교회로 모이지 아니하는가?
내가 눈뜨지 않고서 남을 눈뜨이게 할수 있을까?
하나님에 대한 사랑 신부의 사랑!
창조목적된 신부사랑의 권세 그것이 휴거의 역사임을!
공중부양에 미련을 가지신 분들은 영과 육이 다름을 인식하고!
육신이 죽으면 처녀의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는 분들도 과학적 신앙을 하시기를 권면하는 바이다.
사랑안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고 진행되고 있으며 이루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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