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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하나님이다

인생의 때를 맞추어서 살아가는 사람은 전능자가 정해놓은 법칙에 맞추어 얻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보려는 사람들은 기도와 계시와 꿈을 통해서 느끼고 싶어한다

대다수가 인간이 신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라 판단하고 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 있으니!

바로 때에 맞추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대화하면서 그 때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리하면 금을 찾아서 해매던 사람이 금맥을 발견하듯이 하나님도 그러한 맥, 흐름속에서 찾고 뵐수가 있는 것이다.

신앙이 왜 유지되는 것일까?
환상과 계시를 자주 받아서? 그러한 능력이 쉬운가?

하지만!

하나의 흐름을 찾아간다는 것은 인생을 통해서 노력해야 발견할 수 있는 축복이다.

신과 인간은 한번을 만나면 지속해서 사랑하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면서 맞추어간다.

이 대목이 신약역사의 한계다.
제대로 된 예수님의 진전을 이어받지를 못했던 것이고, 그렇기에 자꾸만 시한부 종말론이 판을 치게된 근본이유다.

그리고 잘못된 기독역사인식을 심어주게 되었다.

사람의 역사란 개인으론 육체가 소멸되면 지상에서의 삶도 중단이 되는 것이 이치겠으나!

하지만 사랑이란 지속성을 의미하고 그것이 영원성을 뜻하는 것이다.

너와 나의 사랑은 영원하다는 의미란!

너와 내가 지속해서 사랑을 유지해갈 것이란 뜻이다.

그 사랑의 행위속엔 차원적 노력이 동반되어야함은 물론이다.

어릴적 부모와 자녀의 사랑은 딱 수준이며, 대화도 소통도 딱 그 수준이다.

육신의 나이가 들어간다고 영적행위인 생각의 틀도 그냥 확장되어만 가는 것도 아니니!

사람이 생각하고 추구해가는 과정들이 영을 이루고 이를 영원이라 칭한다.

알파와 오메가란 근본적의미도 사랑의 영원성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누군가를 사랑하시면 시작하시고 영원까지 찾으시는 것이다.

아담의 타락이후 아담이 숨어버렸을때 애타게 찾으시는 하나님의 심정이란!

성경엔 하나님께서 아담을 딱 한번 찾으시고, 아담을 찾자마자 바로 심판하시는 대목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어느 부모가 실수한번 했다고 매정하게 부자의 인연을 끊어버리고 돌아서는 것일까?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란!

단 한번의 행위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마태복음 23장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타락의 근본의 뇌타락이다.

생각이 차원적으로 낮아져서 그 행위아래에서 한발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 인생의 굴레속에 스스로를 가두는 행위다.

어릴적 이성의 사랑은 그만큼 무섭고 피해가 크다.

20살 미성년들에게 남녀간의 사랑보다는 우정을 권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개역개정 창세기 3장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인류의 마음과 생각의 타락은 그 시대 하나님과의 사랑차원을 그 차원에 못박아 버렸다.

자그만치 4천년을 그렇게 지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모세도 십계명을 받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생각이 짐승의 것으로 더 변질되는 것을 막아주는 최소한의 통제장치 였던 것이다.

그것을 위대한 모세의 율법이라 칭하면서 예수님의 시대때 까지 그리고 기독역사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대인들의 구원역사가 방치된 것이다.

하나님의 입장에선 유대인들은 인간이대 더이상 인간의 창조목적 대상에 부합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히틀러의 쉰들러리스트같은 심판이 일어나게 된 이유다.

이 시대도 그러하다.

때를 모르고 육체가 소멸되면 그 영이 영의 세계 어느곳을 누리고 다닐 것인가?

수없이 외쳐주어도 그때를 모르는 것은 각자의 책임분담인 것이다.

듣지 못했으면 그 기회가 있으려니와!
듣고도 깨닫지를 못했으면 그 책임이 크지 않겠는가?

이 시대도 하나님께선 때를 통해 나타나고 계시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 마음, 그 양심에 말씀하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