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회개하지 못했고, 그래서 죄사함을 받지 못한채 사망으로 기울게 되있다.
천국의 역사가 임박하여 세례요한은 외치고 다녔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이 대목에서 기독교 부흥을 일으켰던 대한민국의 교회상이 떠오른다.
세례요한처럼!
대한민국의 12지파에선 각각의 달란트대로 생명들을 거두어 들이고, 찬양과 회개의 눈물로 주님이 다시오시기를 간절하게 기다려왔던 것이다.
그런데 주가 다시오셔서 천국으로 휴거시켰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유대인들이 엘리야를 기다리며 하늘을 고개아프게 쳐다보듯이!
대한민국의 기독역사도 전철을 되밟아가고 있다 정확하다 어쩌면 이리 똑 같을까?
지금 유대인은 하나님이 이땅에 다시오실 것이란 믿음이 있기나 한 것일까?
지금 기독교는 예수님의 재림이 있을것이란 확신이 남아있기나 한 것일까?
다시 돌아가서!
회개하라! 무엇을 회개하란 뜻일까?
회개란 돌이켜 고침을 받는 것이다.
어린아이에게 무수히 많은 충고와 타이름을 주었어도 뒤돌아서면 또 잘못을 저지른다.
구약의 회개란 신약의 한차원 높은 말씀을 들어야 과거의 행위가 얼마나 회칠한 무덤같은 형식과 외식이였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에서 회개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회개란 말씀이 있어야 회개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예수님도 말씀을 가지고 오셨다 바로 회개를 시키기 위해서 였다.
선지자도 회개를 시킬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주일날은 다른말로 목욕재개하는 날이다.
죄를 씻어내는 날이다.
죄를 뉘우치게 해서 깨끗게 회개시켜주는 날이다.
4천년만의 회개를 한다는 것은 구약인들에겐 신약의 예수님의 말씀을 전해듣는 것이다.
예수님이 3년반이란 기간 말씀을 전하셨고 그 말씀으로 유대인들은 깨닫고 죄를 뉘우쳐야 했던 것이다.
당대에도 세례요한같이 전조하는 말씀도 있어야하는 것이고!
새시대 말씀의 핵을 전하는 역사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 언제 어떻게 오시냐?
바로 도적같이 오신다는 것이다.
그러함으로 깨어있으라는 것이다.
졸고있는 자는 시대의 주말씀을 들어도 깨닫지를 못할 것이다.
알아도 따르지를 못할 것이다.
그들 성직자들에겐 이미 따르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이밴자에게 화가 있는 것이다.
스스로가 보고 듣고 판단해가는 것이다
도즉무언이라!
깨달음을 어찌 다 말로서 구설할수 있을까?
깊이 기도하면 자신의 양심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신다.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다.
성령의 역사를 무시하면 구원의 길을 갈수가 없다.
명품을 사려면 백화점으로 가면된다.
진리는 어디에서 구할수 있을까?
바로 자신의 마음이 구원의 길인 것이다.
생각이 다르면 구원도 달라지게 된다.
인식을 달리하고 보아야 한다.
나다니엘이 예수님을 만나서 무엇을 물었을까?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물었을 것이다.
그는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는 자였기 때문이다.
이미 포스팅했던 내용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깊은 내용이라도 깊게 보아야 깊게 보인다.
다시 불러온 내용이다.
요한복음 16장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
아래 성경구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란 무엇인지를 알수 있다.
요한복음 7장
27.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 하는지라
28.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29.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
3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34.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시니
35.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그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36.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
즉, 아버지로부터 와서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간다는 말씀을 인정하는 그것을 의의 기준으로 삼으셨다.
당대 12사도들 또한 예수님 십자가 그 순간까지도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이러한 의의 기준은 우편강도의 사건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누가복음 23장
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12사도들 또한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에대해 깨닫지를 못했으나 우편강도는 12사도들 그 누구보다 정확하게 확실하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온전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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