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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와 무, 유무형실존세계


유와 무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인식하고 있는 것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해하고 있는 것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도 그러하다.
이해되는 사람이 있고 이해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의 마음이 그러하다.
인식되는 영역이 있으며, 인식의 범위를 벗어난 영역이 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도 유무형실존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흑암이 깊음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위에 운행하셨다.
유무형실존세계로 구분되어 있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빛이 있으라하매 빛이 있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유무형실존세계로 구분하여 창조하시니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것이다.

창조란 무엇인가? 생명이다. 생명력을 지니도록 만드는 과정이 창조이다.
창작도 그러하다. 기존의 것은 새롭지않고 생명력도 없다
새롭게 생각한 것은 생명력이 있어서 곁가지들이 자라나게 되는 것이다.
가지가 자라고 잎과 꽃이 피게된다.
그리고 종국엔 결실을 맺게 되는 이치다.

사람의 마음세계가 그러하다.
저 우주질량의 98%를 암흑물질이 차지하고 있듯이
사람의 마음도 무저갱과 같아서 어둡고 밝혀지지 아니한 흑암한 세계가 대부분이다.

인면수심이라 하지 아니하던가?
오직 도를 깨우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일체유심조라!
마음안에서 찾고 깨우치며 반성하며 노력한다.
예수님도 산상설교를 통해서 마음밭의 이치를 설파하셨다

마음이란 문과 같고 마음이란 그릇과 같다.
문을 열어야 새로운 차원에 다다를수 있으며, 그릇이 만들어져야 새로운 것을 담을수 있기 때문이다.

인식이란 그릇과 같이 담을수 있어야하고, 문과 같이 열수 있어야한다.
그래야 느낄 수도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종국엔 변화라는 차원세계에 접하게 된다.
변화란 빅뱅과 같아서 한번 시작되면 끝없이 확장해 나간다.
사람은 한번 인식하고 만다. 하지만 변화를 덧입게 되면 끝없이 팽창해 나가게 된다.

사람은 변화의 존재체다 이는 마음존재체란 뜻이다.
사람은 생각의 존재체다. 이는 생각존재라는 뜻이다.
마음존재체로서 변화를 추구하고 생각존재체로서 이상을 추구한다.
마음은 변화를 덧입어가고 생각은 이상이란 목표를 향해 지속적으로 나아간다.
이상이 매순간 바뀔수 있을까?
마음이 죽을때까지 한번도 안바뀔수 있을까?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로부터 과거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시선의 왕복을 통하여 통찰해가야하는 이유다.

온고이 지신이다. 과거로부터 배워서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것이고, 새로운것 속에서 과거의 것을 되짚어 보는 것이다.

내 생각은 내 사상은 변하지 않는다 맞다! 그럴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이상이 아닌 자신의 마음이 고집불통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심각히 바라볼수 있어야한다.

탄력을 잃어버린 마음은 무엇으로 대체할수 있을까?
마음이란 늘 변화를 추구해야한다 그래야 새로운 맛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없다면 구태일 뿐이다.

즉, 과거의 형에 집착할 뿐이다.
새롭지않고 그러하기에 관심도 식고 식상하게 된다. 즐거움이 사라지는 것이다.

같은 행위를 반복할지라도 늘 새롭게 인식되는 것이 없는지를 보아야하며, 괄목상대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3일만 지나도 변화를 찾아볼수 있다.
주어진 환경이 달라지기 때문이며, 그에따라 변화해가기 때문이다.


보여지는 세계가 있는 것은 볼수 없는 세계를 가늠하기 위한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보는 것을 보이는 대로만 판단하면 고착상태에 빠지게 된다.
보여지지 않는 변화의 세계를 잡아야한다.
그렇게 되기위해서 늘 내 마음의 세계를 차원으로 이끌어가야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그에있다.
말씀의 핵심도 그것을 내포하고 있다.

주는 말씀의 핵으로서 보는대로 듣는대로 심판치 아니하신다 기록되어있다.

결과를 얻으려거든 보이지않는 부분을 다스려가야한다.
내 마음을 다스렸을 때 결과가 나오듯이!
상대의 마음도 다스렸을 때 결과를 얻을수가 있다.

한 가정이 남편이 아내가 자녀가 각각에서 다슬리지 못하면 결과를 얻을수가 없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