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고!
비록 육신은 소멸되어도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이를 두고서 우리는 영원한 삶, 영생이라 부른다.
또 영생을 얻었으니 구원받았다고도 한다.
예수께선 말씀하시기를!
개역한글 요한복음 6장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카톨릭에선 이러한 미사의식을 통하여 구원에 대한 확신을 지니며 신앙해간다.
기독교에선 이러한 성찬식을 특정한 날에만 하는 것은 아마도 의식으로서의 의미에 더 치중을 두기 때문일 것이다.
생존이란 의미에 방점을 둔 이유는 바로 선의지를 논하기 위함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삶에 대한 애착과 소중함은 생명의 본질 바로 그것일 것이다.
태어난 것이 자유의지가 아님에도 태어나서 창조된 의미를 스스로 터득해가는 삶이 사람이나 동물에게 하나의 의지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생존에 대한 본능 이것은 모든 창조물들에게 선한 의지로서 작용하니 이것을 선의지라 부르는 것이다.
사람도 마음이 있고, 양심이 있으니!
그안에 목적된 의지를 지니며 이를 선의지라 칭한다
사람의 본성이 선한 것이니! 선의지라 부른다
인류의 역사는 혹독한 자연환경과 질병 그리고 사나운 맹수들에 이르기까지!
자신 하나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연구하고, 노력하고 몸부림쳐온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하고, 어떻게 살아기위해서 살아남는 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육신의 삶이 이러하거니와 영혼의 삶은 어떠한 의미인 것인가?
영혼으로서 살아간다는 것과 영원한 삶을 위한 의지를 세우는 과정들을 무엇이라 칭할 것인가?
선한의지를 세운 영혼은 그 자체로서 선하며 창조하신 하나님과 성령님의 모양과 형상으로 재창조되어간다
창조목적이 이에 있다.
하나님께선 아담에게 따먹지 말아라! 죽게된다.
이 말씀을 통해서 인류는 영혼으로서 살아남는 하나의 원칙을 배우게 되었다.
이를 아담이 어기게 되면서 인류의 삶은 영혼으로 살아남는 법을 망각하게 되었다.
그로인하여 하나님의 창조목적도 깨지게 되었다.
전아담은 사망한 영이 되었고, 후아담인 예수께선 생명의 영이 되었다.
구원이란 바로 생명의 영으로 재창조되는 과정이다.
내 영이 어떠할까?
자신의 영을 본적이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꿈에서 혼적으로 보이기도 하거니와!
영계에서 실체로 보는 것도 있으며, 육신을 쓰고서 환상처럼 보는 경우도 더러있다.
이처럼 내 구원의 확신은 실체로서 확인될수 있거니와!
굳이 그러한 체험이 아니라 할지라도!
내가 생각하고있는 실상이 무엇인지를 곰곰히 떠올려보면 내 영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앨런 머스크같은 사람들이 과연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바늘귀를 통과하는 약대가 될수 있을까?
그 사람 생각의 핵이 무엇인지가 뻔히 보이는 것을!
사람은 몇마디 섞어보면 차원적으로 소통이 될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수 있다.
민주주의자가 공산주의자와 몇마디 대화면 충분한 것이다.
구원이란 바로 이러한 생각/ 이념의 세계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추접하게 짐승의 사체를 제단에 놓고서 향피우는 그런짓들은 그만두어라!
아버지께선 산제물을 원하신다
바로 너희의 몸/ 마음/정신/생각 그 핵이 무엇을 향하여 있는지를 살피시는 것이다.
이런 맥락의 의미다.
하나님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어찌 알수 있을까?
그래서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각을 가늠해가는 것이다
예수님의 생각은 무엇으로 알수 있는가?
바로 그의 말씀이다.
헌데 12사도들이 예수님의 말귀를 잘 알아듣지를 못했다.
오병이어를 이야기하시면서 내가 말하는 것이 그 떡이 아님을 왜 모르느냐고 책하셨다.
이처럼!
차원이 낮으니! 영을 이야기하면 육으로 알아듣는 것이 이 신앙의 세계인 것이다.
영부활인데도 육신부활이라고 주장하는 교파가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처녀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 얼마나 자극적이고 달콤한 사탕발림인가?
상상만으로 로또를 사는 기분일 것이다.
어차피 로또란 사는 기분인 것이지!
당첨되지 않았다고 슬퍼하지 않는 것처럼!
구원의 핵심을 이야기하였다.
내가 가는 길을 너희는 따라올수 없다고 하신 말씀은 무슨의미일까?
차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구약의 길을 벗어나야 신약의 길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신약의 길일 벗어나야 새시대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매순간이 결정과 결단의 시간인 것이다.
살아서 듣지 못했고, 깨닫지를 못했다는 것을 죽은 영으로 알게되었을때엔...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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