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새벽 영혼 사랑.

새벽과 영혼과 사랑이다.

영혼이란 새벽의 이치다.
새벽이란 무엇인가?
어두움이 사라져가고 빛으로 물들어가는 여명이 아닌가?

물질의 세계로 가득찬 세계에 비물질인 정신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정신이란 고요한 마음에 신이 깃드는 상태를 의미한다.

인간의 마음은 물질이라는 고요함을 의미한다. 그러한 마음에 신인 영이 깃드는 상태를 정신이 든다 말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선인들은 정신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어온바!
인간의 육체도 신인 영체도 아닌 그러한 상태를 정신이라 관조하여 온 것이다.

제정신이 들었다! 이 말은 네 마음에 신이 깃들어서 물질에 치우치지 아니하고 기분에 치우치지 아니하고 사리를 분별하여 그 시작과 끝을 헤아릴수 있는 상태를 의미했다

그래서 정신나간 자라고 말하는 것은 일의 시작과 끝도 모르며 지기분에 취해서 살아가는 방탕한 사람들을 일컫는 것이다.

세상엔 정신나간 정치인, 예술인, 연예인, 학자들도 많다
유트부를 보면 명성과 부귀에 눈멀고 귀먼자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오고있다.

하나같이 정신나간 자들이다.

마음의 근본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도라고 한다.
깨달음이란 바로 제정신을 찾는 과정이다.
그과정에서 하나님을 깨달아가 가게된다.

하여 깨달음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정신나간 삶이다.
그래서 도를 깨달은 사람들은 제일 먼저 자신이 살아온 삶들이 정신나간자의 삶이였음을 지각하게 되고, 제정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한 삶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며, 그러한 삶을 추구하는 과정이 구도의 삶이다.

섭리엔 이러한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신령함을 이루어가는 이상세계다.

여기에도 먹고 살기위해서 오는 사람도 있고, 그저 삶이 힘들어서 온 사람도 있을 것이며, 단순히 병을 고쳐보려고 기복신앙을 위해 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오기까지 과정이야 어떠하였던지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목적이 되지 않고서는 존재하기 힘든 것이다.
진리의 체질이 되어야 존재할수 있고, 세상적인 기준과 잣대로는 버티어내기 어려운 곳이 섭리다.

크게 알아주는 것도 없고, 크게 명예를 떨칠수도 없는 곳이다.
그러하기에 추구할수 있는 것은 진리인 말씀이요!
주에 대한 사랑뿐이다.

영혼의 성장은 온전한 사랑을 통해서이다.
사랑이란 실천을 위해서 말씀이 필요하다.
말씀은 영혼의 양식이 아닌가?

하나님은 새벽에 좌정하신다 하셨으니!
내 마음에 하나님이 임하시는 그 시간에 내 마음은 신령함으로 물들고 내 마음은 새벽을 맞이하는 것이다.

천지창조를 하신 이가 지금도 내 개인에게 창조의 역사를 펴고 계신다.
베드로의 고백처럼 밤이 되도록 얻은것이 없었으나 주의 말씀대로 행하였더니 배에 가득차고 잠기게 되었다.

이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깨달음의 새벽을 맞은 사람만이 알수 있고 깨우칠 수 있는 창조의 이치다.

삶이란 창조의 섭리역사다. 성경의 말씀처럼 저녁이 되어야만 아침을 맞을수 있다.
삶이 왜 피곤하고 곤고하며 한계를 맞을수 밖에 없는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창조법칙이기 때문이다.

인식의 한계에 다다라서야 새로운 지평이 열리기 때문이다.
인식의 한계속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찾을수 있는 기회가 열리도록 하셨다.

바로 인식에 있다. 인식이란 한계속에서 지평을 새롭게 열어가는 것이다.
어릴적 마냥 좋다고 보낸 시간과 행위들이 장성함에 따라서 장사지내듯 버려지고 새로운 차원의 행위들을 인식하여 받아들이게 되는 이치다.

어릴때엔 친구처럼 지내고, 부모자식의 사랑으로 보내지만 장성한 후에는 사랑하는 배우자를 만나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창조의 섭리를 펴게 되는 것이니!
바로 사랑의 역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