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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서서

마음이 두근거린다.

무엇이 나의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것일까?
조금만 상황이 변해도 사람의 마음은 민감하게 반응해간다.

날씨가 조금 바뀌어도 분주히 옷을 바꾸어입고, 사람의 입맛도 바뀌어간다.

한여름엔 시원한 냉수를 찾게 되고, 겨울엔 뜨끈한 국물을 마시게 된다.

창조주가 사람을 창조했을때 마음이란 CPU를 집어넣어서 주변의 상황에 위기를 느끼고 민감하게 대처해서 살아남으라는 본능과 같은 장치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과 생각엔 차이가 존재하는데 이를 차원성이라 부른다.

사람은 마음대로 인생을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헌데 하나님은 영혼의 존재인 인간에게 생각이란 또다른 차원의 CPU를 고안해 내셨다.

생각이란 본질적으로 영원성이다.
한번 생각이 쉬이 바뀌지 않는 것은 육체가 아닌 영혼에
최적화된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고차원성이고 그래서 사람의 마음으론 고정된 생각을 변화시키기 힘들다.

그사람의 마음좀 기쁘게 해주었다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쉬이 바뀌지 않는다.

이처럼 마음과 생각은 차원성을 띠고 있는 소프트웨어인 것이다.

기계어(machine language)는 기계에 최적화된 소프트웨어이고 software는 다른 차원인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차원성을 띠게끔 프로그램된 언어다.

비유를 들자면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이러하다.

그렇다면 정신이란 무엇일까?

아마도 C언어 정도일 것이다.

기계어와 고급언어의 중간에서 서로 호환시키는 구조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사람의 정신도 그렇다.

마음과 생각을 교류시키고 서로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그러한 대화의 창이라 할수 있다.

내 육신과 영이 혼적차원인 정신을 통하여 소통하는 것이다.

하여! 내 마음이 두근거리는 이유는 육신의 상황과 주변변화에 따른 감지능력이기도 하거니와!

정신을 통하여 영의 생각세계가 마음에 느껴저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꿈의해석이란 프로이드의 심리학은 바로 이런 인간의식의 내면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신앙이란 본디 이러한 내밀한 세계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신앙이 과학이란 세계와 접점을 이루지 못하고 긴세월을 왔기에 이러한 설명에 대한 디테일이 부족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두근거림은 자신에게 하나의 확신을 지니게 한다.

영적세계에 대한 부족한 지식과 깊은 신앙심이 없다 할지라도 어떠한 부분에서는 하나의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시그널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미리 대비하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신앙의 영역이 작동한다.

내가 어떠한 변화의 기로에 서서 기존성을 벗어나고자 변화를 추구하면 현실적인, 경제적인 문제점이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해서 변화의 과정을 진행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것이다.

본인도 이 글을 쓰는 순간도 변화의 기로에서서 신앙이란 메카니즘을 작동시키고 있다.

하나님은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알고 계신다.
들에 피어있는 백합화도 다 살피신다.
하물며 너희 인간들이랴?

마음이란 차원과 생각이란 차원이 심하게 격동하는 것이다.

서로의 입장에서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기존 인식을 들이대는 것이다.

이때에 정신세계가 중재한다.
현실을 직시하고 생각의 추구방향에 맞추어서 사람의 마음을 다독이는 것이다.

하여!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 생각의 세계를 추구해갈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마음으로 다 느끼지만 변화를 추구해 갈수 있는 것은 정신력이다.

심지가 굳건한 사람이 변화의 바람을 타고 날아갈수 있는 것이니!

변화의 기로에 서서 나 스스로를 관조해보는 것이다.

To  be or not to B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