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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무르익었다

무화과 나무의 잎새가 연하여짐을 알아차려야 결실의 때가 왔음을!

무화과나무의 열매는 정말 어느순간 맺었다가 금방 떨어지더라!

익으면 먹어야지 하다가 어느순간 열매가 땅에 떨어지고 새가먹고 놓친 경우가 많았다.

인생에 기회도 그 순간 맞이하지 못하면 나중에 깨닫고 안타까워한다.

아마도 적극성을 가지고 알아보고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그 때를 놓치는 것이라!

어부도 때에따라 물고기의 종류를 구분해서 잡아들이고!
농부도 때에맞게 씨를 뿌리고 거두어 들인다.

헌데 사람은 사람을 만나는 때가 있고, 그에맞게 예비하고 준비하여 어떠한 만남을 이어가야 하는 것임에도
인연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속에서 시간만 흘려보내는 경우도 있더라.

남녀의 만남도 그러하거니와!
때에 맞는 사람사이의 관계성도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되는 부분인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만남도 하늘이 맺어주는 것이라고 가만히 있으면 어찌 자녀라는 결실을 맺을까?

신앙이란 영역은 참으로 태평한 세계처럼 보인다
항상 떠있는 태양으로!
잔잔한 물결치는 저 바다처럼!
우리가 걸어다니는 이 대지처럼!
그렇게만 인식하는 세계인듯!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과 알아간다는 것은 어떠한 노력의 영역일까?

성경을 읽고서 기도하고 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목사님이나 신부님의 말씀을 경청한다.

중세시대까지만 하여도!

일반 시민들이 얻을수 있는 배움과 지식이란 어떠했을까?

지금 초등학교수준의 배움을 그때 당시에 얻으려면 어떠한 대가와 노력을 지불해야 했을까?

지금은 인터넷만 찾아도 홈스쿨에 대한 자료들이 넘쳐나는 때이다.

그러하니! 즉 혼적 인식의 빈약함속에서 스스로가 기도하고 성경을 읽을수 있다 하더라도!

그래서 중세시대엔 신학을 하는 사람들의 지적 수준이란 지금 이시대 목회를 하는 사람들의 시대적 지성과는 차원을 달리하였다.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 라는 말은 단지 철학만을 논하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중세시대엔 신학자들이 법학/의학/연금술(화학)/천문학/지리학/ 물리학/음악/미술/문학  등등 어마무시한 시대지성을 터득하기위한 노력들을 하였다.

그러하였기에!
감히 그 시대의 보편적 지성으론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가고 배워간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이였을까?

당금엔 현대인들의 보편적 지성은 중세시대의 것을 한참이나 뛰어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하니!

감히 무화과나무의 잎새가 무르익었을 때라고 말할수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인자의 도래도 때가 된 것이다.

비슷하게! 정도령이 온다는 것도 미륵불이 온다는 것도 같은 맥락의 이치다.

때는 하늘의 때이고 인간은 그 때를 알기위해서 찾아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애쓰는 것이다.

그래서 그시대 이스라엘도 나름의 민족의 운명에 대한 예언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표현이 무화과나무가 연하여 지면 인자가 온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런 맥락이다.

그리고 그 당시에 이스라엘은 메시아가 오기전 물질들은 풍요하였으나, 민족의 신앙인 유대교의 물질적 타락도 극에 달하였던 시기다.

오죽했으면 예수님이 화를 내시면서 성전을 뒤엎어 버리셨을까?
내 아버지의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다고

세계에서 열손가락에 드는 국민총생산의 지표를 나타내고 최근에 홰외에 전투기/전차/자주포/다연장미사일 등등을 수출하는 국력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는 어느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