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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기대섭리

알수 있는 것과 알아야 하는 것의 차이를 어디에 둘 것인가?

사람은 성장하면서 가르져주지 않아도 사회적존재로 알수 있는 것들이 있다.

사회경험을 통하여 소통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동물들은 나름의 사회를 이룬다고 하지만!

그 지능이나 뇌활동이 무딜수 밖에 없는 행동양식이다.

호랑이와 사자라 할지라도 나름의 군집생활을 하겠으나, 배타적 생활방식으로 뇌한계를 극복하지 못한채로 앞으로도 짐승의 혼으로만 존재할 것이다.

사람은 집단이성을 가지고 있기에 뇌의 발달과 의사소통으로 혼적차원에서 배워가고 이루어가는 삶을 누리고 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하와에게 기대했던 기대섭리란 무엇인가?

따먹지 말아라!

이 한마디는 성경적 문자적 해석에 국한해서 바라보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대다수의 원시인들은 따먹고 살아왔다.
하나님은 그것을 금하셨다.

너희도 짐승이 되어서 살지마라!
짐승이 된다는 것은 육체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가르치는 대로 행하면서 살아가라!그래야 생명나무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지않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으면 죽으리라!

혼이 그 영이 죽으리라!

살아있어도 산것이 아니다.

혼적으로 배우고 깨우치고 영적 각성에 이르지 못하면 죽은 것이다.

인간의 생명나무 그 뇌가 활동을 멈추는 것이다.

개역한글 창세기 3장
20.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가죽옷이란 그러한 행실이다.
짐승의 가죽을 입고 살아가니 짐승인 것이다.
육체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의 형상인데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면 짐승과 다를바가 없다.

아마존 원시인을 인간으로 본다?
인도네시아 섬에 사는 석기시대의 인류를 인간이라 부른다?

그렇게 짐승처럼 살아갔으나!
하와는 모든 산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하와로부터 다시 생명의 나무가 자라날수 밖에 없었다.

근본된 토지를 갈며 살았지만!

가인과 아벨을 낳았다.
아벨이 죽게되자!
하나님은 셋을 주었다.

그리하여 그로부터 하나님을 찾는 산자들이 생겨난 것이다.

개역한글 창세기 4장
25.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사람은 하나님에게 배우지 아니하면 살아있지 못한다.

산자들은 하나님을 부르고 소통하고 그렇게 존재해가는 것이다.

왜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을까?

그 혼과 영이 살아났기 때문이다.

인간은 육신의 활동으로 존재해야 그 육이 살아남는 것을 하나님께서도 당연 아시고 그렇게 축복해 주신다.

헌데 산자로서 존재햐야 하는 부분에 대한 기대섭리가 있는 것이다.

너가 마실것, 입을것, 잠잘곳 필요함을 내가 다 아노라!

하지만! 먼저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생각하라!

그것이 네가 따먹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다.

따먹기만 하면 짐승이 된다. 육체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를 엄히 경계하시고 그에따른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고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신다.

무엇이 가죽옷이고, 무엇이 근본된 토지인지를 스스로 깨달아라!

성령은 말씀하고 감동주신다.
스스로가 성장하여 깨달아야한다.
그래야 따먹지 않고 생명나무로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