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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에너지

사랑은 어떠한 모습과 구조와 형태를 지닐까?

인간의 사랑은 비교적 루틴된 구조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전능자인 하나님이라면?

그 구조와 형태와 모양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을까?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고 깨우친다면 정말로 깊고 깊은 것을 알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 사랑에 대하여 수도하여 깨닫고 메시아 사명을 받고 선포하셨다.

그 깊은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40일 광야에서 금식기도를 하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개역한글 마태복음 4장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은 말씀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내면을 채우는 것이며!
하나님의 몸이 되어 사는 것이다.

말씀을 들으면서 믿음을 굳건히 하여서 그의 몸된 삶을 살아가면 자연스레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으로 재창조되어서 사랑이란 실체를 이루는 것이다.

헌데! 추상적으론 이렇다 할것이나!

구체적으로 어떠한 행태로 존재해가야 하는지는 다른 영역이다.

빅뱅이란 태초 우주의 에너지 폭발이 지금의 우주를 생성 / 확장시키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과 인간의 살아가는 이 세상에 퍼져나가고 있다.

이 모든 총량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어느 부분들로만 보아서는 하나님의 사랑실체를 확인할 길이 없다.

그래서 메시아는 하나님의 사랑의 형상이기에!
소자중 어는 하나라도 지옥에 보내지 않기위해서 십자가 제물로서 하나님께 조건을 세우신 것이다.

결국 메시아는 세상 모든 사람을 다 포용하고 사랑하였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볼수 있었다.

이와같으니!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보기 위해선 알고 깨닫기 위해서는 이 세상을 사랑해야 알수 있는 것이다.

인종과 민족과 나라가 존재하여 그 문화와 특성과 생각의 추구하는 것들이 각양각색이다.

중국의 어느 사람들은 중화라는 세계관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미국의 어떤 사람들은 세계경찰로서 그 사명을 주장하며, 프랑스의 어떤 사람들은 세상 모든 문화의 감성과 디테일이 자기나라에서 퍼져간다고 여긴다.
또 인도는 어떠한가?
카스트라는 신분제도를 통하여 세계가 유지되고 다스려질 것이라는 통념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일본이란 나라의 사람들은 문화적 역사적으로 가장 기본이 되는 것들이 자기 나라로부터 시작하여 북으로 세계로 퍼져갔다고 주장한다.
역사적 유물을 날조하다가 여러번 창피를 당하고도 그렇다.

이런 행하는 인류들의 모든 어리석음이 다 하나를 이루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실체를 형성해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국가와 민족과 개인이 생각하고 살아가는 일상에 대하여 머라고 따로이 말씀하시진 않으신다. 왜일까?

사람이 생각하고 추구하다보면 하나의 답을 서로가 얻어갈 것이란 확신때문이다.

그렇게 세상과 인간을 창조 설계했기 때문이다.

알아야한다
하나님의 생각을 헤아리기 위해서 기도하고 소통해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차별된 인식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소통이 되지 않는다.

통합의 인식으로 포용의 인식으로 나아가야한다

인간이 인간을 노예부리듯이!
흑인을 노예로 여기고 부리던 그 세월이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노예해방을 위해서 서로가 목숨을 걸고서 싸우게 하셨다.

사람의 생각이란 그 인식된 세계란 극한까지 치닫지 않고서는 변화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예수님이 메시아인데 십자가 희생을 통하여 인류를 깨닫게 하셨다.

그뿐인가? 쉰들러리스트는 어떠한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들의 인식의 총합으로 실체를 이룬다면 어떤 일방의 생각만으로 통일하려는 전체주의적 사고는 매우 위험하고 하나님의 뜻에도 맞지 아니하다.

특히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그릇된 전체주의적 사고란! 매우 위험하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그런 권한을 주지 않으셨다

다만 싸우지 말고 서로를 사랑하면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말씀하신 것이다.

나이가 어느 선을 넘어서면 깨닫는 것이다.

경제활동을 하는 목적과 이유가 비단 육체에 한정된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찌 개인이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알수 있으리요?

새들도 산짐승들도 다 그들만의 살아가는 이치가 있으려니와!

사람들도 각자가 삶의 이치를 깨우치고 배우는 과정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에 대하여 배우고 알아가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란 예수의 말씀이 이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