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라고 안목이 출중할까?
프로라 할지라도 자기만의 인식안에서 판단하고 행한다.
그리고 책임을 지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 일수록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 루틴한 방법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학연/지연/권력구조에 따라서 흘러가기 마련이다.
예수님에 대한 평가도 그시대 인식과 권력구조속 이해관계로 평가되었던 것이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선한이는 하나님 한분 뿐이시다. 즉 하나님과 관계된 무엇이 있을수 있더란 말이냐?
어떤 청년이 예수님을 선한이여! 라고 호칭하지 않았던가?
개역한글 마가복음 10장
17.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쌔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 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선과 악은 인식의 문제다.
인식에서 선과 악이 갈리는 것이다.
하여 무선악을 주장하기도 한다.
사람의 마음, 즉 그릇에 따라서 선과 악이 갈리는 것이다.
이처럼!
어떠한 분야에서 좋고/싫고 인식이 갈리는데 선과 악처럼 갈리는 것이다.
프로선수였고, 스카우트를 할지라도!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이강인 같은 선수를 김민재같은 선수를 우리는 같은 나라 사람으로서 선하다고 인식하고 들어가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은 좋지 않은 점을 더 크게 보기도 하고, 인종차별과 편견이 작용해서 아시아인이 축구를 하면 얼마나 하겠느냐?
헌데!
파리생제르망이라는 세계최고의 클럽에선 이강인을 데려갔다.
다른 팀들도 눈여겨 보았지만!
결국 데려간 팀인 세계최고 스트라이커중 하나인 네이마르가 있는 생제르망에서 데려간 것이다.
김민재는 어떠한가?
이처럼!
나사렛에서만 몰라보았던 것이다.
내가 최고가 아니니까! 최고를 몰라보고 폄하하는 것이다.
최고의 진리를 들어도 만화방 무협소설 읽듯이 흥미롭게만 바라보는 것이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그랬다.
하늘나라 천국과 영혼과 천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더니!
그들의 반응과 생각차원이 딱 그 수준이었다.
개역한글 사도행전 23장
6. 바울이 그 한 부분은 사두개인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인인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노라
7.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이니
8.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9. 크게 훤화가 일어날새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저더러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뇨 하여
지금 기독교의 영적수준은 이와 다른가?
안다는 것은 아는 것을 안다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 라는 구절이 있듯!
학자지 대병야! 학자들이 배워가는 사람들임에도 세상 모든 이치를 다 아는 것처럼!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아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사람에게 배우는 것도 있지만!
근본적으론 창조주 하나님에게 배우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선 그 말씀을 깊이 있게 설파하신 것이다.
개역한글 마태복음 11장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내가 최고가 되어야 최고의 존재자도 제대로 알아보는 것이다.
시대가 왔어도 사명자가 왔어도 최고의 눈을 가지고 있어야 시대와 사명자를 알아보는 것이다.
간음한 여인에게 돌이나 던지는 족속들이 되어서야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까?
죄를 누구나 지을 수 있지만!
그 행위가 죄인것을 그리고 벗어나야 함을 인식하고 깨달을때 자유함을 얻으수 있다.
[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라는 부분에서 우리의 인식과 생각들이 다 짐이되고 죄가 되어서 그 좁은 길을 지나가려 하는 것이다.
이에 예수께선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음속 근심과 염려와 걱정을 벗어나 평안을 주고, 쉴수 있게 해줄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예수께선 쉬게 해준다고 하셨다.
육체를 벗어나야 쉴수 있는 것이다.
그 인식과 생각에서 벗어나야한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아야 하는 것이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생활차이를 보라!
아프리카와 미국 뉴욕을 비교해보자!
미국은 거지라도 공중화장실에서 세수라도 하고다니고 이어폰을 끼고 아이패드로 인터넷을 한다.
아프리카 수천마리의 가축을 기르는 추장일지라도 거덕대기 움막안에서 생활하고, 지구촌 세상이 어찌 돌아가고 어떠한 문화가 세상을 휩쓰는지도 전혀 모른채로 살다간다.
때를 아는 것!
시대를 아는 것!
시대의 진리를 깨달아 가는것!
사도 바울이 그랬다.
유대인이고 로마사람으로서 최고의 지성이라 착각하고 무지했던 시대의 원시인이 자각하여 최첨단의 신약말씀과 시대 사명자를 바로 보아서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새역사로 돌아섰던 것이다.
나는 아닐까? 나는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그러기에는 내가 무엇을 얼마나 모르는 지?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성찰과 통찰이 필요한 것이다.
세상은 참으로 편리한 시대가 되었다.
마음만 있으면 인터넷에 검색어만 치면 본인이 알고자 하는 정보들이 차고도 넘친다.
그러하기에! 아는 것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지녀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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