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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발전

물질문명이 발달해 가는 과정을 살피어보면 사람의 생각세계가 그 분야를 향해 집중되어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먹고 사는 것이 죽을때까지 가장큰 숙제다.

그래서 소량생산의 식량을 대량생산으로 바꾸면 서로가 힘들이지않고 서로 싸우지 않고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들이 재배기술과 유전자공학까지 동원하여서 전세계인이 굶주리지 않고 먹을수 있는 생산량을 얻게 되었다.

에너지는 어떠한가? 이 또한 셰일가스라는 신기술로 어마어마한 양의 연료를 얻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대양의 해저에 있는 메탄가스만 하더라도 천문학적인 양이 매장되어있고 상용화를 위해서 기술력을 집중하고 있다.

그뿐인가? 이젠 달에서 에너지원을 채쥐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이에 비하여 사람의 정신문명은 어느 차원을 가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정신문명의 발전 또한 비약적으로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사람의 뇌에 대한 연구는 방대한 연구테이터가 축적되어 있다고 한다.

환상/이상/꿈/영계체험에 대한 연구까지 없는게 없다고 한다.

뇌인지/뇌심리 등등의 분야로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되어가고 있다.

우리가 너무 모르고만 살아가고 있다.

천국? 영계?
우리의 접근방식은 구약시대로부터 이어져온 샤먼에 지나지않는다.
과학이 없다는 뜻이다.

현실성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언가가 실존한다면 그에대한 실체가 확인이 되어야한다.

최소한 내가 시그널을 보내면 상대가 반응이 있고, 그 반응에 대한 인식행위가 존재해야 실존한다고 볼수 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외계인들에게 시그널을 보내고 외계인이 시그널을 보낼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연구해간다.

이처럼!

신과 인간의 관계성도 이러한 실존행위에 대한 인식이 필요한 시기이며, 이것을 영계과학이라고 부른다.

원자는 양성자 / 중성자 /전자 이렇게 삼위일체다.

유일신도  하나님/성령님/성자의 삼위일체로 존재한다.

삼위를 알아가고 깨우쳐가는 과정도 이러한 과학적 연구방법과 유사하다.

그래서 초기 중세신학에서도 삼위일체론에 대한 연구를 하여왔으며!

지금에 이르기까지 명쾌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의식을 보면 육체와 혼체와 영체의 삼위일체로 [존재] 하는 것이다.

이를 아는 사람은 수시로 무시로 자신을 관조하며 생활하는 것이다.

하나의 생각이 떠오르면 과연 이 생각이 육체에서 오는 것인지? 혼으로부터 온것인지?  영으로부터 기인한 생각인지를 차원적으로 살피는 것이다.

내 생각이면 육으로부터 오는 것이요!
하나님의 생각이라면 영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영은 신의 영역에 존재하는 나인 것이다.

인간의 영역에 존재하는 나는 육체로서 존재하고 있다.

이 차이를 관조할 수 있는 차원적 접근이 필요하다

성령이라!

성령이 무엇일까?
성령님 말고 성령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예전 포스팅에도 언급한 바가 있으나!

어떠한 특이한 사실에 흥분하지 말고 차원적 접근에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방식이 바로 과학이라 불리우는 분야다

과학자들은 하나의 사실에 흥분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현상이 어떠한 과정(원리 또는 이치)을 거쳐서 이렇게 발현되었음을 알게 되는 것에 집중해간다.


개역한글 요한복음 7장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이 두 구절을 기존 신학자가 연구해내고 풀어낼수 있을까?
성경도 과학이 발달하는 만큼 풀리어간다.

영계과학으로 풀어가야 할 부분인 것이다.

고전물리학이 아닌 영자역학으로 풀어내야할 포인트인 것이다.
우리의 인식을 논하고 있다.

성령은 우리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것을 성령이라 기록하고 있다.

성령이 임재하셨다고 표현하는 기독교의 그 의미는 무엇인가?

사람을 통하여 성령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철저히 부정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참람하도다.

너무 몰랐고, 너무 무식했다.

영계과학의 기초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영과 영계의 근본이치를 깨우치고 예수께서 오신 것이다.

그리고 말씀으로 비유로 풀어주시고 가르쳐주셨다.

지금 이시대는 어떠한가?

말세이겠거니! 무언가 급박하고 변화무쌍한 세상의 흐름이려니! 이런 보편적 감성으로 지나가고 있다.

아마게돈! 세상의 종말! 등등

사람은 자신을 너무도 모른다.
자신을 모르는 만큼 창조주도 너무 모른채로 담담하게 삶을 이어가고 있다.

너무 거칠고 험난한 세상인지라!
가죽옷을 스스로 지어입고서 창조주와 단절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고독하고 단절된 삶속에서 허무를 느끼고 있다.
내 육과 영의 단절이 가져오는 차원적 괴리감이 막연한 불안감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알면, 배우면 그리고 실천하면 나에게 소통과 일체됨의 기쁨이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