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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답

항상 묻기를 기대하고 계시는 존재자가 있고!
항상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은 존재가 있다.

신과 인간의 관계를 따지고 들어가면 이러한 원리로서 신과 인간은 하나를 이루고 있다.

헌데 번지수를 잘못 찾은 인간은 때로는 태양과 달에게 때로는 나무나 돌에게 때론 샤머니즘에 기대기도 한다.

왜그럴까?

전능자 여호와 만주의 주께선 눈에 보이지가 않는다.

그래서 군대에 간 남자친구를 버리고 새 남친을 사귀듯이!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짝지어진 하나님을 갈아타고 다른 신들에게 기웃거리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구약시대부터 지금까지 오래된 하나의 루틴이다.

하나님께선 이런게 너무도 싫으셨다.
그래서 무당을 보거든 돌로 쳐죽이라고 말씀하셨다.

영혼을 사냥하는 사단과 하나인 까닭이라!

개역한글 레위기 20장
26.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로 나의 소유를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27. 남자나 여자가 신접하거나 박수가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처음으로 돌아가서

진정 묻고 싶고!
진정 물어오기를 기다리는 이 간절함이 서로에게 이어지지 못하는 근본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하나님은 보이시지 아니하신다.
보여주려해도 보이지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차원적으로 존재하시는데 이 차원적이란 말은 상대적이다.

그래서 절대적 존재개념보단 상대적 존재개념으로 인식해가야 할 존재자다.

인간은 시공간 개념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파악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신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초월적 존재로 나타나시는 것이고 존재하시는 것이다.

과거에 인식불능
현재도 인식불능
미래엔...?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인간은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미래의 어떤 상황조건을 차원적으로 유추해갈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함으로 하나님이 존재하신다고 확정하고 증거를 대고, 논리적인 이해로 납득되기 힘든 것이다.

모든 일들을 되돌아보면 모든것이 하나님이 인도하신 뜻인것도 같고!
모든 것이 내 노력 여하에 따라 결정된것 같기도 하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인생의 반만 살아보아도 내 뜻대로 되는 일들이 거의 없더라는 것이다.

배우자를 만나서 가정을 꾸리는 것과
자식을 낳는 것과 기르고 가르치는 것과
직장에서 내 꿈을 펼치는 것
그리고 자아를 실현할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 등등

어느  하나만 성공해도 불행하지는 않을 터인데
어느것 하나도 성공하지 못하였으니!

그때엔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정말 내 능력이 되어서 그러한 것들을 경험하고 얻어왔는지를!

그때엔 묻는 것이다.
하나님! 제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후회되는 과거가 너무 선연하게 떠올라서 참 부끄럽습니다.
제게 지혜를 주셔서 부끄럽지 않은 인생이 되길 간구하고 그 방법에 대해 묻습니다.

비로소 이러한 마음의 준비가 되면 물질에서 벗어나 혼과 영으로 하나님의 존재영역에 첫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이때에 하나님께 묻게되고, 그 물음에 대한 답이 들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께 묻는 것이 지혜이고, 소통이고, 사랑이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