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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인간 & 섭리의 창조주

신약의 메시아가 평탄한 길을 와서 육신의 생이 다할 때까지 100세 가까운 삶을 살며 온세상에 복음을 다 전하였다고 치차!

과연 하나님의 섭리가 제대로 온전하게 펴졌다고 할수 있을까?

인간이란 존재는 다양성의 집합체다.
각양각색의 생각 DNA로 아우러진 결정체다.

보물이라고 하는 것들은 오랜세월을 견디고 견디면서 화학적. 물리적 특성을 지닌 광물체들이다.

다이아몬드/ 루비/사파이어/금 등등

인간이란 진화의 결정체들로서 각각의 DNA를 지니는데, 생각도 그러하다.

시대적 차원성을 더하여서 고난과 시련과 역경을 통하여 사람의 생각은 DNA를 형성해가는 것이다

그 생각의 DNA를 지닌 영혼이 영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선 구약시대 가장 우수한 생각 DNA를 지닌 족속을 가나안이란 곳으로 몰아넣고서 진화역사를 펴셨던 것이다.

예수님시대에 예수께서 가나안이란 곳에 정작 복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시고!

이방땅 다른 족속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다 그렇게 승천하셨다.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보면 기독교 역사가 지닌 특성은 구약의 유대민족들이 지니었던 생각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어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세계를 확장시키어 갔던 것이다.

[ 인간의 생각과 신의 생각은 하늘과 땅차이다 ]

왜 하나님이 이렇게 역사를 펴시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차원에서 머물다가 끝나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세월이 지나고 오랜 역사가 지난후 하나님의 뜻이 여기에 있었구나! 깨닫는 것이다

2천년 역사가 지났고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다.
우리는 무엇을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인가?

정말 예수님이 오시기는 하는 것인가?

온다/ 간다의 정의는 무엇이고?
무엇이 오고 간다는 말인가?

신의 생각은 인간의 한계언어로 기록되기에!

2천년 역사의 시공간을 뛰어넘어서 그 예수가 다시온다고 증거할 것인가?

하나님은 창세부터 오셨고 지금도 오시고 가시고 다 하신다.

하지만! 인간은 그 모습을 보지 못할 뿐이다.

신에게 있어서 그러한 물리적.실체적 오고/간다는 행위가 의미있을까?

와도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을!
그래서 육신쓴 신의 형상으로 메시아를 보냈던 것이 아닌가?

하여! 신은 섭리역사를 이시간도 펴시고, 인간은 그 의미를 깨우치지 못하여 이순간도 고난과 역경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몸으로 체득해가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기독교가 당대에 이상한 종교집단으로 배척받았고!
그러한 시기를 오랜세월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세상인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그의 심정과 사명으로 그 누가 오고 새시대의 생각을 전한다 할지라도...

고난과 역경과 시련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묵묵히 실천해 갈 뿐이다.

이러하니! 성경에 기록되기를!

[다번역성경찬송]
개역한글 마태복음 24장

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생각의 차원이 낮아서다.
생각이 지혜롭지 못해서다.
생각이 고정관념과 구시대적 사고에 젖어 있어서다
생각이 물질에 있어서다.( 부자가 천국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 그래서 천국을 못가는 이유)

큰 교회를 나가고 십일조를 잘하고! 의를 쌓는다고 천국을 간다?
본질적으로 카톨릭이 부폐했던 이유랑 무엇이 다를까?
그러면 생명전도를 하면 천국의 차원높은 곳에 갈수 있을까?

천국이란 문지기만 되어도 좋다고 한다.
천국은 그런곳이다. 세상물질관념으로 명예관념으로 인식할 수 있는 그런세계가 아니다.

구약인이 머무는 영계와 신약인이 머무는 영계가 같을까?

물과 기름이 하나로 섞일까?

생각은 다른 생각이 하나로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천사의 생각과 사탄의 생각이 하나로 수렴할 것이다.

아니다! 생각은 결정체다. 독립체다. 다르다.

새시대를 파악하고, 바라보고, 인식하고, 탐구하고, 연구해가는 것이다.

왜 우리들의 삶을 보며 그리도 힘든가? 왜 내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는가?

나는 어느 차원으로 생각의 방향을 잡아야 하는가?

+ / - 만 할것인가? 아니면 미.적분을 할것인가?

차원성의 문제다. 생각의 차원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
신앙의 기본을 이루는 것은 생각차원이다.

기독교가 중심종교인 이유가 무엇일까?
예수님의 생각차원이 다른 성인들과는 궤를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석가모니? 신의 모양과 형상을 논하였던가?
소크라테스는?
공자는?

신의 모양과 형상을 논한다는 것은 인간의 시작점과 도달해야 할 지점을 논하는 것이다.

알파와 오메가를 논하는 것이 기독교 역사관이고 인식관이다.

이것을 철학자들은 직선적 역사관이라 묘사하지만!
그렇지 아니하다!
리미트 무한대를 생각해보면 과정인 것이다.

기독교 역사관은 종말론이 아니라 과정의 차원세계를 논하고 있는 것이다.

쉽게 표현하자면! 인간이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블랙홀을 완벽하게 파악하기 까지의 과정을 논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끝나겠지! 하지만! 어느세월에 끝나느냐는 점이다.
않끝난다 영원히 과정이다.
왜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우주는 팽창하고 있기에!
생각의 세계가 그러하고!
신을 향해가는 인간의 인식세계가 그러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