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것이니라!
도를 닦는 사람들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생활한다
아마도 마음편하게 잘먹고 살려면 바다가로 가서 살았을 것이다.
헌데 산속에서 초근목피의 삶을 살아가더라도 쌀밥 한덩이 먹지 못할 지라도!
생각하고 깊이 깨우치면서 남은 인생을 하나의 도를 깨닫고 싶었던 것이다.
조문도 석사가의!
삶의 세계란 ! 육신이 살아가는 삶이니 이것이 기본이고 육적 삶의 세계다
육신이 존재해야 삶이 유지되는 것이다.
이는 보아서 알수 있는 감각의 세계, 색이라 칭한다
하지만 곤고한 생각을 채우기 위해선 보기만 해서는 채울수가 없기에!
연구하고 분석하기 위해서 생각에 생각을 더해가는 것이니!
이는 공의 세계다.
공이란 비어있으나 채워져서 존재해가는 세계다
동양화를 보면 여백을 남겨둔다
여백이란 보이는 세계의 경계선이 되고, 실존하는 세계를 암시해주는 역할을 한다
사람도 가득찬 마음의 세계보단 비워져있어서 더욱 깊고 공명하는 생각세계로 들어갈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다.
경계/차원 이 두단어는 같은 내용 같은 모습이다
경계를 안다는 것이 차원성이다.
경계를 모른다는 것은 1차원이다.
하여! 차원을 안다는 것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를 구별하는 것이다.
보이는 세계의 삶만을 추구하는 것이 육적삶이고 육적인 신앙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추구해가는 것이 영적 삶이고 영적인 신앙인 것이다.
영이란 생각이고 실존이다.
존재하기위해 몸부리치는 생각의 세계다
생각이란 고차원의 에너지를 동반해야 뚫리는 세계다.
마음이란 배부르고, 편하고, 즐겁기만 한 삶이다
사랑이 배부르고, 편하고, 즐겁기만한 것인가?
남녀가 사랑을 해도 그렇지 않음을 알수 있다
오히려! 배고프고, 불편하고, 아픔도 따른다.
하지만! 사랑이란 이러한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상황을 감내하면서도 서로가 가진 생각의 세계에 접근해가는 오묘함과 스릴을 느끼고, 서로가 공명하면서 실존의 느낌에 끌리는 것이다
음과 양이란 경계이다.
서로가 다른 세계에 존재하고 있기에 그 경계의 선을 넘어가고자 노력해가는 삶이다.
예수께선 이러한 육과 영이 통하는 삶, 인간과 하나님이 경계를 넘어서 일체되어가는 삶!
이러한 영적인 생활을 통해 영적신앙의 기본을 다지려하셨다.
사람이 어찌 떡으로 먹고 살아간다고 존재할수 있겠는가?
생각이란 것을 조금이라도 해보면 너희의 존재이유가 나오고!
인생이 왜 그리 허무한지도 깨닫게되고!
그러한 삶을 통해서 영이 부활되는 삶을 얻을 것이니!
그것이 영이 살아가는 영생의 삶인 것이고!
그러다가 아버지에게로 나아가게되면 천국의 삶을 이루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먼저는 하나님 아버지를 마음.뜻.목숨 다해서 사랑하여라!
혼자서는 힘드니까? 나를 따라서 나아가자!
내가 곧 길이고 진리고 영의 생명이 되느니라!
너희가 어느 세월에 스스로 깨달아서 아버지께 나아가겠느냐?
너희 제사장들아!
구약 4천년을 방황만 해오지 아니하였더니라!
그리하여 이제는 율법, 몽학선생에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전케 해주는 내 진리의 말씀을 듣고서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뼈와 살이 하나가되는 진리와 은혜가 충만한 삶!
부활의 삶, 영혼의 삶을 추구해가자!
그리하면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는 사명에 동참하자!
이시대는 바로 이러한 삶을 살아가야 할 때이다
그대들은 오늘 죽는다면 여한이 없는가?
필자는 그러하다 그 세계를 알게되고, 깨닫게되고, 느낄수 있게 되었다.
무엇으로 보고, 듣고, 느낄수 있을까?
내가 육신의 삶이 다하면 내 영이 어느차원으로 갈수 있을지 감이 온다면 도를 이루었다 말하지 않겠는가?
도란 길이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깨우쳐가는 것이다.
기독교 역사가 왜 하나님의 중심역사인 것인가?
본질인 핵 사랑의 세계를 깨우치고 가르쳐주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의 가장 깊은 내용중 하나가 바로 아가서라는 성경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세계를 문학적으로 철학적으로 깊이 있게 다루어놓았다.
아는 자는 여유가 있고, 조급하지 않게 된다.
열처녀중 다섯은 지혜롭고 슬기롭기에 여유가 있는 것이나
다섯은 그렇지 못하기에 기름을 구하려고 혼인잔치 전날까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것이다
현 기독교는 기름을 구한 다섯처녀인가?
스스로를 속이면서 육적신앙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다.
성전의 크기를 키우고 더 많은 신도를 불려가고 있다.
이미 그 길은 어디로 통하는지 예정이 되어있다.
인생이 100살까지 살아간다고 여유가 있는 것인가?
알면 여유가 있는 것이다 시간이 있는 것이다.
모르기에 시간이 없고 여유없이 육에만 투자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영을 살리는 삶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생각하여라!
성령은 말씀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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