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성전을 짓는데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렀는가?
헌데 이를 허물고 사흘만에 다시 세우리라는 말씀은 어떠한 의미일까?
이처럼! 예수의 말씀은 영으로 차원높게 표현하신다.
성철스님은 마지막 유언을 남기시면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
하셨으니! 이또한 불교계에선 이상하게 풀어낸다
그들의 현학적 접근과 인식이 이처럼 사도의 길로 들게하는 것이다.
산이 오랜 세월을 지나도 산일 뿐이다. 흙이 물성이 바뀌어서 물이되어 흐르지는 못한다
물은 온도에 따라서 끓어서 수증기가 되어서 하늘로 올랐다가 땅에 내렸다만 할 뿐이지!
그것이 화학적 변화를 일으켜서 흙이 되지는 못하는 이치를 말씀하신 것이다.
무엇을 경계하고 교훈하고자 함이였을까?
스님이 속세를 등지고 산으로 향하는 까닭이 무엇이였을까?
그분은 마지막 숨이 거두는 날까지 불교계를 두고서 어떠한 팩폭을 하시고 싶어하였을까?
그래서 화두로 남기신 터이다.
총무원장 선거철만되면 몽둥이를 들고서 난입하는 혈기방장한 젊은 스님들...
그는 마지막까지 불교계의 정화와 변화를 염원하셨을 터이다.
예수께서도 마찬가지 입장이였을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신앙의 영적 회복과 각성을 두고서 간절함이 어찌 없으셨을까?
예수께선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영적 예루살렘성전을 회복하셨다.
예수님의 몸이 예루살렘성전이기 때문이다.
괄목상대라는 말이 있다.
사별삼일즉갱괄목상대(士別三日卽更刮目相待)
헤어진지 삼일이 지나면 그 사람에 대해서 다시 살피라는 뜻이다.
사람은 하루는 그렇다 이틀째도 그렇다 그러다가 세변연속 생각을 하게되면 그 틀에 변화가 생길수 있다.
헌데 이것은 선비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학문을 하면서 연구하고 깨닫는 사람이 선비이고 학자이다.
신앙을 하고, 목회를 하는 사람들중에 연구하고 깨닫는 사람이 어느 정도나 될까?
면담을 해주고 교회재정을 살피고, 어려운 성도를 보살피고! 지역사회에 공헌하고 등등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하늘과의 소통이고 깨달음이다
인간의 생각은 어둡기에 빛이 필요한 것이다.
기름이 없는 등불을 어디에 쓸것인가?
환한 등불이 되어서 빛을 발하기 위해선 기름이 필요하다.
깨달음 없이는 사역한다는 것이 무미할 뿐이다.
짠맛을 잃은 소금일 어디에다 쓸것인가?
성전 밖 어두운곳에 던져질 뿐이다.
열처녀의 비유를 풀었다. 깊이 읽지를 못하기에 무엇을 말하는지 감을 못잡더라!
목회자들은 통감해야할 부분이다.
마태복음 22장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5.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9.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12.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첫사랑을 상실하면 무슨 낙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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