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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길엔 인도자만 있다

길을 안해재주는 사람만 있을 뿐이지 그를 업어서 데례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길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려주고 길잡이 역할만을 해줄 뿐이다.

손을 잡느냐?/ 마느냐? 이것은 자유의지에 달려있다.

사람들은 막연하게 나이가들어서 또는 불치의 병에 걸려서 생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들어서야 누가 자신을 안락한 세계로 데려가줄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석가모니를 섬긴다고 해서 그가 사후세계에 데려가주는 것이 아니며!

예수를 믿는다고 천국의 어느 지역에 데려가시는 것도 아니다.

그럴 능력이 되었으면 머하러 시간을 들여서 장황하게 천국의 원리와 이치를 설명하시고 육과 영의 차이를 설교하셨을까?

도깨비 방망이를 들고 있지 아니하신다.

그래서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를 믿고 따라오는 자에게는 아들된 권세와 그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것이라! 말씀하신 뜻이다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의 역할일 뿐이다.

얼마나 진실되게 감동을 주어서 설교해주느냐! 그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던 것이다.

표적을 보이라고?

요나의 표적밖엔 없다고 말씀하신 이유다.

그렇다면 죽음을 앞두고 10년/20년/30년/50년 전부터 무엇인가를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접근해가야 답이 나오는 것이다.

단순히 석가다. 예수다. 알라다. 미륵불이다. 등등의  ○  × 선택문제가 아닌 것이다.

내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어디에 이를지에 대한 나름의 생각이 체계를 잡아가야 마지막날 자유의지로서 손을 내밀수 있는 차원에 이르는 까닭이다.

삶 자체가 해답이 되고, 또는 의문이 되어서 끝없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고 종국엔 생각의 차원이 올라가서 명확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석가도 공자도 인생의 문제에서 벗어나지를 못하였다.

석가모니가 해탈이라는 표현을 썼던가? 그가 말하는 해탈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욕심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 해탈이던가?

왜 인간이 창조되었는지를 논하였는가?
근본의 생각을 제시하였는가?

예수라는 존재자는 바로 이러한 부분에 대하여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명확하게 보았고 인식했기에 그러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명자라 할지라도 길을 인도하고 안내할 뿐이다.

최후의 선택과 결단은 개인의 자유의지에 달려있다.

인간의 마음이 선악과다. 선일수도 악일수도 있다

그래서 성선설/성악설로 논쟁이 많은 것이다.
도에선 무선악이라 칭하기도 한다.

헌데 기독교에선 선악과라 부른다.

선악과인 마음과 무선악인 인간의 차이인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자유의지를 인정하느냐? 의 여부에 따라서 인정하면 선악과가 부르는 것이고, 인정하지 않으면 무선악이라 부르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창조주가 가장 잘 알것이다. 본인 창조주가 창조했기에 그러하다.

그래서 선악과를 창조하셨기에!

인간은 선과악의 갈림길에서 항상 고뇌하며 자유의지를 세워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깊이 파헤쳐들면 지상천국과 이어지는 논제다.

지상천국을 이루려는 하나님과 그를 대적하는 사단이 인간의 마음인 선악과를 두고서 치열하게 다투어오는 것이다.

구약 4천년/ 신약 2천년 역사다.

마지막 역사는 바로 이 선악과 뺏는 것에서 승부가 나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진화의 역사로서 생각의 차원이 올라가기 위한 몸부림의 역사다.

이러한 몸부림이 인간 개개인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죽을때까지 선악과를 지닌채로 자신의 의지를 세워가는 과정이 바로 삶이다.

하나님은 선악간에 살피시고 행한대로 갚아주신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

사람은 마음을 만들어가고 하나님은 불꽃같이 살피신다.

그 마음에서 혼이 싹트고 영의 세계에 이르러서 영혼을 이루게 된다.

창조의 목적은 이처럼 지상에서 천국까지다.

내가 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 태어났는지?
그리고 어떻게 자유의지를 세워갈 것인지?

이에대한 답을 얻었으면 영의 세계에 들 준비가 된 것이다.
이를 일컬어서 조문도 석사가의라! 한다.
어떠한 여한이 인생에 남아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