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기를 누설하면 안되지만! 이렇게 하면 방도가 있을 거라면서 한 도사가 비방을 가르쳐준다.
정말 천기를 읽을수 있을까?
한 개인의 인생사는 크게 다르지 않기에 가능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인생사 어느정도 겪어보니 100살까지 살아보지 않아도 인생의 창조목적과 창조주의 의도 등등에 대하여 나름 생각과 고뇌를 해보면서 하나의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인생은 어느정도 짜여진 각본대로 흘러갈수 밖에 없더란 것이다.
하나님을 믿던 부처를 믿던 알라를 믿던 인간이라면 겪고 지나가야할 인생의 포인트 포인트가 크게 다르지 않더란 점이다.
내가 어느 한 연극의 배우라면 사실감있게 느끼고 표현할수 있다면 관객으로부터 열렬한 칭찬과 지지를 얻을수 있을 터이다.
헌데 생각이 깊어지다보니 내가 배우라면 어떻게 행해야할까?
한 인생이 짜여진 각본대로 살아가야 한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칼뱅의 예정설만 보더라도 당대의 신학자가 왜그리 허술한 예정설이란 논제를 제시하여 사람들을 혼란케 하였을까?
무언가를 느꼈던 것이다.
인생의 창조된 목적과 창조주의 의도를!
누구는 왕족으로 태어나고 누구는 하녀로 태어나서 그 삶속의 테두리안에서 저물어 가더란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물었을 것이다.
당연히 답은 오지 않았을 터이다.
하지만, 생각을 하고 겪어보고 또 기도하고 깨달아보니!
인생이란 창조주가 주관하고 다스림이 확실함에도 창조주가 그 입술을 굳게 다물고 계시니...
인생이란 복잡한 사연이 있겠지만! 결국 주어진 길속에서 애를 쓰도록, 수고하도록, 그리고 깨달아 가도록 창조주가 설계했음을 눈치채게 된다.
왜? 누구는 왕이고, 누구는 하녀입니까? 물었지만! 답이 없는 것이다.
동양철학에선 사주팔자라는 것이 있고, 조선엔 토정비결이란 유명한 역학서적도 있다.
이게 다 허무일까?
사람의 마음이란 애걸복걸 하면서 그 세월의 연륜과 생각의 정미함으로 이어지는 치밀한 논리구조로 설계되어있는 것이다.
창조주는 사람의 마음이 허상이 아니라 실체로 이어져가길 바라시는 것이다.
그 선제조건으로서 진정성이다.
인생을 아둥바둥 살아가면서 단맛, 쓴맛, 허무한 맛을 두루 섭렵케 하시고!
온실속 화초처럼 자란 비조영인들은 없는 야생의 그 실존세계를 얻어가시는 것이라!
그것이 창조의 주된 목적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인간은 인류역사를 거듭해오면서 편법을 쓰기 시작한다.
바로 철학과 도의 세계다.
하도 당하다보니! 반발심도 생기고 어차피 인생의 프레임을 알아버린 차에..
산속으로 들어가서 홀로 실존세계를 완성해가기 시작한다.
그러한 분야의 천재가 석가모니다.
소승불교라 하지만! 석가모니는 그 세계를 눈치채고 편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좀더 차원이 다른쪽으론 철학자들도 있는 것이고!
이러하니! 창조주도 좀 당혹스럽다.
그길이 아닌데...
하도 인생을 힘들게만 하시니까!
사람들도 해탈해버리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그나마 좀 건전한 경우이고!
그게 아니면 이 땅에서 육신 살동안 육의 쾌락으로 쇼부를 치려는 족속들도 생겨나고 그것이 주류가 되어서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메시아란 참! 머리아픈 사명이다.
창조주라는 연극작가와 자유의지를 지닌 배우들 사이에서 연출을 제대로 해내야만 하는 사정이다.
사람은 분명 자유의지가 있고 그렇게 창조되었다.
지옥으로 가는 족속들과 지옥은 아닌데 창조주를 찾지않고서 스스로의 존재세계를 사후에서 구축해가는 족속들도 퍼져가는 것이다.
육신으로만 본다면 이런 인식의 상황이 된다.
그래서 영으로 보아야하는데 그 차원에 이른다는 것은 그나마 창조주와 대화의 차원이 되어야 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 사람이 메시아가 되는 것이다.
메시아로 태어났지만! 메시아가 스스로 되어야하는 과정이 처참할 정도의 고난과정을 겪으면서 연단에 연단을 받고서 사명선포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문도 석사가의라!
이것을 깨닫고 나면 더 살고픈 열망도 크게 없고, 더 못산다해도 서운하지도 않다.
그래서 도의 세계를 깊이 깨달은 사람중엔 득도하여 육신은 남지만!
영혼이 영의 세계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고서 그대로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마지막 삶을 마감하기 위해서 산속 깊은 동굴속에 들어가서 입신으로 삶을 마감하니!
사람들은 그 남겨진 육신을 찾지못하고, 그저 등선했다고 표현하는 것이니!
반은 맞고! 반은 사실과는 다르다.
육체는 지상에 남아져서 그대로 썩어지는 것이다
이게 이런 상황이 바로 예수님의 성육신 미스테리다.
이것을 모르니!
기독교가 예수님의 육신이 승천하셨다고 믿는 것이다.
분명 누군가는 예수님의 육신을 어디다가 모셨을 것이다.
사람이 죽기전 왜그리 두려운 것일까?
알고가는 사람은 그 세계가 두렵지 않다.
육성이 약해지면 상대적으로 영성이 강해져서 그 세계에 대한 느낌과 반응이 강하게 느껴져오는 것이다.
그래서 두렵고 떨리는 것이고, 안찾던 하나님부터 석가모니를 거쳐 알라까지 찾아대는 것이다.
인생의 이러한 이치를 알고서 창조주에게 기도하여 묻는다면 답은 없겠으나!
은연중 남은 인생의 내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아가게 되나니!
이를 공자께서 말씀하신 지천명이라 하지 않을까 싶다.
공자도 누구를 믿고 사후세계를 논하지 아니하였겠으나!
인간으로서 하늘의 뜻이 무엇일까? 항상 깊은 고뇌를 하였을 터이다.
그가 계획한 것들이 제자들을 통하여 제대로 이루어진 것들이 없지만!
사실 그는 육적으로 사명을 파악했기에 그리 마지막까지 안타까웠을 것이나!
공자가 그 사명을 참으로 열심히 해준 덕에 수많은 사람들이 양심이 선하도록 이끌어주는 길이 된 것이다.
선악을 알고 옳고 그름을 알아간다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 것을!
그 마음의 토대를 공자가 토목기초공사를 해주었던 것이다.
인생을 살아보았으면 남은 인생에 내가 무엇을 해가야할지 보이는 것이 느껴지는 것이 있을 터이다.
헌데 욕심이 지나치면 죽을때 까지도 양심의 소리를 외면한채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이런 불편한 진실을 알기 원치 아니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바람일 수도 있다.
그만큼 사람들의 진정성이 요구되는 구원세계이기 때문이다.
사업을 하는 사람도 이게 잘될까? 성공할 수 있을까? 모든 염려와 근심과 걱정이 있을 것이다
예수께선 이런 사람들에게 염려와 걱정을 하지 말아라!
사람의 마음을 좀먹는 것들이다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주가 너희와 함께 함을 믿어라! 결국 믿음을 유지하고 실천해가면 어떠한 형태로든 길이 열리도록 하실것이란 말씀이다.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별것 없겠으나
아는 사람은 담담하게 겪으면서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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