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나야 하느니라! 그래야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선생이시여! 사람이 어떻게 거듭날 수가 있습니까?
어미의 배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야 합니까?
너희가 내 말을 오해한 것이니라!
....
머리로만 받아들여서는 이해가 안되고, 마음으로 느껴야만 머리로 이해가 되는 것이니...
이는 마음에서 시작해서 머리로 깨달아지고 머리에서 생각해서 마음으로 깨달아지는 과정이다.
인생은 목적을 이루기위한 삶이 아니라 종국엔 준비를 위한 과정이다.
그러한 과정은 위에서 언급한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여 하나의 체계를 이루는 삶인 것이다.
거듭난다는 것이 한번의 생각과 한번의 깨달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휴거! 휴거란 육신의 부활이 아니고! 영적 각성의 세계임을 논한 바 있다.
휴거란 거듭나는 것이다.
부활되고 부활되어서 어느 차원에 이르는 과정을 휴거라 칭한다.
예수께서 지상에 오신 이유가 바로 휴거시키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구약 사망권에서 신약 새역사 생명권으로 휴거시키기 위해서 이 땅에 사명자로서 오신 삶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인생을 꾸려가는지를 연구하고 분석하신 바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서양식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께선 동양의 어느 고원지대 티벳에까지 물어 물어 다다르신다.
불교관 그 마음의 세계를 경험하고 느껴보신 것이다.
유대 제사장들과 성전안에서 묻고 답하기를 반복 하였지만! 마음에 관한 실마리를 찾을 길이 없었던 것이다.
바로 실존세계인 마음을 알아야 천국의 문을 열수가 있는 것을!
그 안타까움을 가지고 그 갈급함으로 인류구원의 문을 열어 제끼기 위해서 그 이역만리 티벳고원에 다다르신 뜻이다.
하나님도 이를 아시고 예수께 이끄신 바일 터이다.
그래서 천국에 관한 비유를 사람의 마음밭 비유로 두시고 너희의 마음이 이러이러하니 너희의 마음을 도닦듯이 닦아서 천국에 이르라 말씀하신 설교다.
하늘의 아들이라 일컫음을 받는 사명자라 할지라도 보지않고 듣지않고 경험하지 않고서 알고리즘을 짜낼수는 없는 것이다.
도대체 30초반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하고 오신 것인가?
예수께서 보내신 사생애 30년의 세월은 다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가?
메시아는 인류구원의 샘플이다.
그처럼 살아가면 그와같이 천국에 이를수 있는 것이다.
그러하니! 보통의 사람이 메시아를 만난다 할지라도 그처럼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다.
그래서 메시아는 참으로 어렵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구라는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바라보시는 것이다.
그는 사명자로서 딱 하나 간절하게 바랄뿐인 것이다.
[ 이땅에 불을 붙이러 왔노니 그 불이 붙었으면 더이상 무엇을 더 바라겠느냐? ]
심령의 불/ 영혼의 불/ 말씀의 불/ 진리의 불/성령의 불...
그 불이 붙어야 천국이 누룩처럼 이 지구에 퍼져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천국을 향한 먼 항해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휴거를 이룬 사람은 스스로가 깨닫게 된다
자기 영혼이 이를 각성하고 느끼는 것이다.
육신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내가 영으로서 삶을 한차원 높여가고 있음을 육신까지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차원에 이르면 삶에 여유와 관조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깨달은 사람은 더이상 바랄것이 없는 것이다.
오늘 당장 저녁에 죽는다 할지라도 후회가 없는 삶인 것이다.
왜일까? 바로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야하는데 손에 등불이 준비되었고, 등안엔 기름이 채워져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엔 비유하기를 너희의 기름을 나누어 달라하니!
내가 쓰기에도 부족할까하여 나누어 줄수가 없다 하였다.
그럴수 밖에 없는 이유는 기름이란 개성의 영역에서 얻어지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태어난 목적이 다른 바에야 서로가 다른 준비의 상태가 되어야 함이다.
누구는 A를 시작으로 누구는 B를 시작으로 준비해서 나아가기 때문이다.
같은 시대에 태어났어도 같이 메시아를 만났어도 12사도를 사이에서도 그 가는 길이 달랐다.
출발점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마리아와 마르다가 달랐고!
거지 나사로와 베드로가 달랐다.
베드로와 바울이 달랐던 것이다.
모든 체질이 풀어질 때가 오나니 그 때가 어느 때일까?
영도 육도 혼도 모두 풀어지는 때가 아니겠는가?
인생의 바벨탑을 바라보듯이 물질세계에 시선을 둘 것이 아니다.
바로 자기 마음문을 열어줄 그 무엇을 찾아가야 할 때인 것이다.
천국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여기있다 저기있다 할 것이 아닌 것이다.
자기 마음에서 시작되고 준비되어서 담담하게 천국의 문을 열어제끼고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다
가장 안타까운 사람은 시대역사를 경험하고도 육으로만 보고 판단하여 그 구원역사를 놓친 사람들이다.
유대인들이 바로 그러하다.
최고의 바보는 세례요한 이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까?
아니면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하오리까?
예수께선 너무 참담한 심정으로 그의 제자들에 답하셨다.
가서 이르거라! 성경에 예언된 그 역사가 이미 펼쳐가고 있느니라!
앉은 뱅이가 일어나 걷고 눈먼 자가 눈을 뜨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
레이져 시술을 받고 시력이 좋아지고 정말 육신의 눈이 떠져야만 천국의 역사일까?
시대의 차원이 높아졌다. 스마트폰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최첨단의 삶을 누리고 있다.
인간의 혼적 영역이 어마어마하게 발달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혜택들이 무엇을 위한 것이란 말인가?
믿고 안믿고의 문제가 아니다.
강권적인 역사가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개역한글 요한복음 7장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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