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0장
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요한복음 10장
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
성경에 기록된 일들이 다시 그대로 일어난다면..
역사는 동시성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한번 갔던 그 길이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다.
아마! 건망증이 심한 인간이라서 그런지 그럼에도 자꾸 망각하고 대적하고 하늘 역사의 길을 왜곡하는지도...
엘리야... 구약에서 대선지자였다. 우상숭배를 하는 선지자들 850명과 오케이 목장의 혈투를 승리로 이끌어 하나님의 역사임을 증거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승리의 표적으로 증거로서 엘리야를 먼저 보낼것이니!
너희는 그를 보고 내가 이 땅에 올것임을 알라하셨다.
엘리야는 세례요한 이었다.
세례요한에게 너가 그리스도냐? 온다던 엘리야냐? 선지자냐? 유대제사장들이 물었던 것이다.
겸손했을까? 무지했을까? 아니라!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부정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증거에 실패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옥에 갇혔다.
하라는 증거는 안하고서 왕의 치부를 들추다가 죽었다.
죽기직전 하도 이해가 안되어서 ...
내가 이렇게 주를 맞이하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죽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례요한은 제자들을 보내어서 묻는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옵니까? 아니라면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하옵니까?
예수께선 너무 답답하고 심정상하셨다.
옥에 갇힌자가 무엇을 하겠는가?
그래서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눈먼소경이 눈을 뜨고 아픈자들을 치료해주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며 말씀하셨다.
이 모든 것들이 성경에 기록된 일들이거니와
메시아가 와서 이적과 표적을 행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화과 나무 잎새가 연하여지면 그때를 알라고 하셨다.
내가 원한다고 되는 것도 그 때가 오는 것도 아니다.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두고서 기도하였다.
이에 하나님께선 한때와 두때와 반때를 지난 연후에야 이스라엘의 회복이 이루어지신다 말씀하셨다.
무화가 나무의 잎새가 연하여진다는 말은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의 때를 이르는 말씀이셨다.
다니엘이 이 사실을 이 시기를 알았더라면 생애동안 얼마나 좌절하였을까?
다니엘 선지자가 보고자하였던 그 하루를 유대인들은 제대로 맞이하지를 못하고 심지어 역사의 주인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것이다.
우린 기독교역사 2천년의 종지부를 찍을 그리스도의 재림역사를 기대하고 간절히 염원했었다.
불병거를 타고 오는 엘리야가 하늘에서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것인가?
구약에서 못왔으니! 신약에선 다시와야 하지 않을까?
그게 아니라면 세례요한이 그 사명을 하지 못하고 죽었으니!
그가 다시와야 하지 않을까?
결국 역사의 흐름을 보면...
때가 이르렀고 역사가 왔을지라도 내가 맞이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말씀을 듣지 못하고 알수 없고, 전하지 않으면 또한 알수 없다.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책임분담이고, 듣고 깨닫는 것은 인간의 책임분담이다.
하나님은 신약때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사 그 책임을 다하셨다.
하지만, 구약인들이 그 말씀을 믿지 않음으로 역사는 깨진 것이다.
이것이 증거의 역사, 하나님의 역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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