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실존세계의 상실감

필자는 어릴적  나름의 철학세계가 있었다
우물안 개구리의 시각으로 국민학교를 등교하는데 새로운 마을과 사람들이 하나씩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이 너무도 신기했다. 산골 마을을 1시간씩 걸어서 등교했었다.
어린아이가 부지런히 걸어도 오랜시간을 걸어야했지만! 불과 4~5km 정도 였을 터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견하다. 무릎까지 빠지는 산골길을 걸어서 두살 위의 누나와 함께 눈보라를 맞으며 등하교를 했었다.

그러한 시골의 한산하고 적적한 생활이다보니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새롭게 나타나는 사람들을 보면 마치 내게만 나타나는 어떤 현상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죽음이라는 낯선 세계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정체모를 공포와 두려움이 몰려왔다.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아버지가 마을 사람들과 상여를 지고 밤새 그집 주위를 맴돌면서 노래가락이 울려퍼지곤 했다.

그리고 염을 하는 모습을 멀리서 보기도 했었다.
죽음을 한동한 생각하고 내린 결론은 잊혀져간다는 두려움 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라는 존재가 모든 사람들에게 잊혀져간다는 근원적 공포감이 한동안 나를 두렵게 했었다.

실존세계/ 나만의 세계에서 내가 잊혀져간다는 기분은 바로 그런 사망적 상태였던 것이다.

마치 코마처럼! 내가 생명을 유지하고 있으나, 뇌사고는 사망인 상태이다.

이것은 바로 영이 느끼는 근원적 영적세계의 두려움인 것이다.

영들은 두려움을 느낄까? 느끼지 못해서 하늘 천사 1/3인 루시엘 족속들이 전능자에게 반기를 들고서 대적해왔을까?

하나님께 심판받을줄 몰라서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켰을까?

천사의 지능이 인간의 그것보다 훨씬 떨어져서였을까?
그런 모지리들이 어찌 하나님을 보좌해왔을까?

바로 이성보단 더 강하게 작용하는 영적 본능때문이다.

영들의 본능은 인간의 그것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느껴진다.

생각실상의 세계인 비조영의 세상에서 영들이 느끼는 감수성은 인간의 것보다 수백배 수천배 강렬한 것이다.

마치 빛과 어두움의 대조적 느낌처럼!
그들에게 어두움이란 사망과도 같은 것이다.
그들이 어둡다고 느낄때엔 극심한 혼란과 좌절감에 빠지게 된다.

루시엘은 하나님이 넘어서지 말라는 그 선을 넘어선 것이다.
추측건데 인간을 멀리서 수호하는데 만족했어야 했으나!

인간의 뇌에 직접 관여했던 것이다. 인간과 하나님의 뇌소통에 직접적인 관여를 했던 것이니!
이는 부리는 종이 왕의 신부침소에 들어가서 사랑의 행위를 한것과도 같은 행위다.

인간의 몸은 삼위의 전인 것이다.

그런 인간의 핵심지체인 뇌에 개입했던 것이다.

정말로 하나님이 이 과일을 먹지 말라하였냐?
아니다 죽지 않는다.
오히려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타락시켰다.

천사들은 자신들이 느껴왔던 하나님과의 그런 사랑세계를 두고서 인간이 하나님과 더욱 깊이 사랑의 세계를 이루어가면 그들 스스로는 하나님에게 잊혀질까봐 근원적으로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습게도 하나님과 멀어지지 않기 위해서 잊혀지지 않기위해서 극단의 집단 패닉상태에서 아담.하와를 타락시키고 구약과 신약 역사  6천년 동안 하나님께 대적해온 것이다.

이러면 왜 사탄과 하나님이 대적해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영의 세계에서 영들이 느끼는 영적 감수성 바로 영적 사랑때문인 것이다.

또한 영은 본디 하나님과 1:1이다.
그안엔 다른 사랑이 개입할수 없도록 창조하셨다.
상대적으로 사랑세계를 비교하기 시작하면 너무도 힘들고 견디기 어렵다.

그래서 천사들끼리는 그런 사랑세계에 대한 상대적 비교를 논하지 않는다.

헌데 인간은 그런 감정과 감성을 평생 느끼고 연단을 받는다 이것이 인간이 천사보다 차원적으로 다른 사랑의 세계를 이루어갈 수 있는 시스템이다.

바로 이런점에서 천사인 비조영들은 급조된 영인 것이고! 급조된 영의 세계인 것이다.

피조영의 세계와 피조영의 차원적 차별성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피조영인 인간으로서 하나님께 1:1 사랑세계를 창조해 갈수 있는 것이다.